똑딱 사이의 은혜

📅 2026년 03월 21일 07시 01분 발행

시장의 좁은 통로를 지나 오래된 시계방 앞으로 발길이 멈췄습니다. 손바닥만 한 유리문 너머로 작은 의자, 낡은 작업대, 잔빛 기름 냄새가 고요하게 엉켜 있었습니다. 주인의 손끝은 돋보기 아래서 바늘처럼 섬세하게 떨리고, 작은 나사 하나가 천천히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진열장에는 시간이 흐르다 잠시 멈춘 시계들이 나란히 누워 있었습니다. 금속 뒷면에는 세월이 남긴 스크래치가 은빛 얼룩처럼 번져 있었고, 어떤 시계는 오래된 편지처럼 표면이 눌려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 사연들을 묻지 않았습니다. 귀를 가까이 대고, 숨을 잠시 가라앉힌 뒤, 들리지 않을 듯 가는 소리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작업대 위에서 “똑…딱…똑…딱” 소리가 고쳐지기 전까지 약간 삐걱거렸습니다. 일정해 보이던 리듬이 아주 미세하게 앞서거나 뒤처지고 있었지요. 주인은 급하게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작은 체로 빛을 거르듯, 소리의 어긋남을 한 톱니 한 톱니 확인했습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마음의 박자도 그렇게 조금씩 틀어지는 때가 있는 듯합니다. 서둘러 나선 아침엔 생각이 발걸음보다 빨라져 타인의 말 사이로 먼저 들어가 버리기도 하고, 깊은 피로가 내려앉은 저녁엔 해야 할 말이 목 안에서 오래 맴돌다가 밤이 되고 맙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앞섬과 늦음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그럴 때면 스스로가 낡은 시계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어제의 선택이 오늘의 시간을 가로막고, 마음속 한 부분이 잔금처럼 갈라져 있는 것만 같을 때, 손목 위 초침의 망설임이 내 숨결의 떨림이 되곤 합니다. 그래도 시곗방 주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멈춘 시계를 버리지 않고, 귀를 대고, 땀 맺힌 이마를 한번 훔친 뒤, 다시 들었습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이사야 42:3). 주님의 귀가 우리의 똑딱을 향해 기울어져 있다는 약속처럼 들립니다. 어긋난 음을 다그치지 않고,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으시는 분. 흘러간 시간에 매이지 않게 하시고, 남은 시간에 서둘러 내몰지 않으시는 분.

주인의 손이 용수철을 조심스레 감자, 그 미세한 장력 속에서 시계 하나가 다시 숨을 들이켰습니다. 바늘이 천천히 움직이며 숫자들을 지나갔습니다. 흠집은 남아 있었지만, 그 자국들 사이로 빛이 번졌습니다. 마치 오래 기다린 사과 한마디가 관계의 빈틈을 조금 채우는 순간처럼, 무엇이 온전히 사라지진 않았으나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시간도 그렇게 맞춰지는 날이 있습니다. 대화의 마지막에 얹히지 못했던 감사가 늦은 오후에 도착하고, 오래 미루던 안부가 퇴색한 마음을 다시 적십니다. 너무 늦었다고 여겼던 말이 의외로 제때였음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 안의 톱니가 살짝 맞물립니다.

기도 역시 때로는 말보다 귀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집니다. 자신을 변명하기보다 들으려고 마음을 낮추는 시간, 내 안의 똑딱을 따라 한 호흡 길이만큼 고요해지는 그 틈. 거기에서 주님은 우리의 앞섬과 늦음을 함께 품어 한 박자를 건네주십니다.

시계방을 나서는 길, 문 위 작은 종이 부딪혀 잔잔한 소리를 냈습니다. 손목에 찬 시계는 새것 같진 않았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정직한 박자로 반응했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엇갈리던 마음 안에서도 어딘가 다시 이어진 길이 생겨난 듯했습니다.

오늘의 시간표 어디쯤에서 초침이 잠깐 멈칫거리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 지점에 주님의 귀가 닿아 있다는 생각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다 말해지지 않은 문장, 다 끝나지 못한 일들, 다 지우지 못한 후회 한 조각 사이에서, 여전히 들리는 똑딱.

그 소리가 작아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얼굴이 있습니다. 나를 잊지 않으시는 분, 내가 흘려보낸 분초까지도 기억하시는 분. 그분의 손끝에서 우리 각자의 시간이 다시 박자를 찾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밤이 오면 시계들은 벽 위에서 저마다의 리듬으로 방을 엷게 물들이겠지요. 우리의 내면도 어딘가에서 그런 소리를 낼 것입니다. 오늘의 똑딱이 내일의 박자와 부드럽게 이어지기를, 그래서 서두르지 않아도 늦지 않는 길을 걷게 되기를, 마음 한쪽에 조용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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