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의 호흡

📅 2026년 03월 23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안쪽, 간판이 낮게 걸린 작은 수선집에 들렀습니다. 며칠 전 떨어진 코트의 단추 하나를 다시 달아 달라고 맡겨 둔 곳이지요. 문을 밀고 들어가면 오래 써 반들거리는 나무 카운터, 유리 아래에 색색의 단추들이 바다처럼 깔려 있습니다. 재봉틀은 낮은 박자로 숨을 쉽니다. 철과 기름 냄새에 보리차의 구수함이 얹혀서, 마음이 금세 속도를 늦춥니다.

사장님은 말수가 적은 분입니다. 넓적한 손바닥으로 천을 다독이고, 실의 끝을 침에 적셔 바늘귀를 통과시킵니다. 그 작은 통과가 어쩐지 의식처럼 느껴졌습니다. 가느다란 것이 가느다란 것을 찾아 지나가고, 그러고 나면 느슨하던 자리가 조금씩 모양을 되찾습니다. 재봉틀 바늘이 위아래로 오르내릴 때, 벽걸이 시계의 초침과 박자가 맞는 듯 보였습니다. 둘 다 바쁘지 않은 얼굴로, 해야 할 일을 제때에 해내고 있었습니다.

유리 진열장 구석엔 짝을 잃은 단추들이 따로 담겨 있었는데, 낡은 은빛, 윤기 도는 나무, 투명한 것들까지 저마다 모양도 사연도 달라 보였습니다. 어떤 단추들은 오래 기다려 표면이 조금 희미해졌지만, 빛을 받으면 여전히 반짝였습니다. 그 앞에서 잠시 섰습니다. 제 마음 안에도 한동안 짝을 만나지 못한 말들이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별일 아니라고 내 어깨를 슬며시 토닥여 줄 말들. 단추 하나 빠진 코트가 괜히 헐겁게 느껴지듯, 그 말들 하나 없을 뿐인데 하루가 잘 맞물리지 않았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수선을 기다리는 동안, 가게 한쪽 탁자에 놓인 깨진 모서리의 줄자와 누렇게 변한 종이 봉투, 손끝에 얹혀 있던 잘려나간 실 조각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삶도 이렇게 자잘한 흔적들로 서서히 고쳐지나 봅니다. 거창한 새것의 시작이 아니라, 낡았지만 여전히 쓸 만한 것을 알아보고, 그것을 버리지 않고 붙들어주는 손길. 문득 이런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누군가 내 안의 풀어진 자리를 조용히 살피고, 서두르지 않는 호흡으로 다시 묶어 주고 계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장님은 새 단추를 달고, 겉에서 한 번 더 단정히 매무새를 봐 주셨습니다. 코트를 받아들자 작은 무게가 손끝에 와 닿았습니다. 잃었던 것이 제자리를 찾은 무게였습니다. 잠그는 소리도 예전과 달랐습니다. 딸각, 하고 소리가 났는데, 새것의 과시가 아니라 잘 다녀온 사람의 인사처럼 조용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가방 속에서 영수증이 달그락거렸습니다. 오늘의 체온도, 오늘 쌓인 피곤도, 그 소리에 조금 섞여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의 날들은 대부분 이런 수선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흩어진 시간을 한데 꿰매고, 멀어진 마음을 다시 맞추고, 풀린 약속을 조심스레 이어 붙이는 일. 크게 울리는 기적보다는 손바닥 안의 기적들이, 우리를 하루 더 살아내게 합니다.

현관에 들어서 코트를 걸어 두었습니다. 실밥 한 올이 아직 길게 남아 허공에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잘라내지 않았습니다. 그 가느다란 흔들림이 오늘 제게 남겨 준 여백 같아서요. 다 달아졌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유 한 올을 남겨 두어 내일도 다시 단정해질 수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습니다. 가만히 불을 끄며 생각했습니다. 우리 마음의 옷깃에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손길이 이렇게 하루를 정리해 주고 있었구나. 그 생각만으로도 밤이 한결 따뜻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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