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3월 25일 07시 00분 발행
시장 골목을 지나면 한때 작은 사진관이 있었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축축한 약품 냄새가 먼저 반겨주곤 했지요. 안쪽 커튼을 젖히면 붉은 안전등이 방 하나를 적셨고, 낮은 선반 위 세 개의 트레이가 얕은 호흡처럼 고요히 흔들렸습니다. 현상, 정지, 정착이라고 적힌 라벨은 종이와 빛과 시간이 서로를 알아보는 순서를 말없이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젖은 인화지를 집게로 집어 첫 번째 물에 담그면, 처음엔 아무 무늬도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아주 미세한 선들이 물 위에 스스로를 허락하듯 떠올랐습니다. 코끝이, 어깨선이, 빛이 머물렀던 자리가 천천히 자기 이름을 찾았습니다.
삶도 어쩐지 그와 닮아 있습니다. 아침에 떠올랐던 근심의 얼룩이 하루를 전부 덮을 것만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 약속이 하나둘 이어지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다른 표정을 불러올 때, 같은 장면이 뜻밖의 결로 맺히곤 합니다. 서둘러 의미를 단정지어 버리면 초점이 흐려지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들은 검게 타버리기도 하지요. 멈춤이 허락되는 순간, 장면은 제 속도를 회복합니다. 피하지 못한 그림자도 제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물결로 흔들리던 인화지 한 장이 조용히 보여줍니다.
마음이 서투른 날들이 있습니다. 관계의 어두운 구석으로 발길이 자꾸만 들어가고, 내 말이 내게도 낯설게 들리는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면 암실의 빛을 떠올립니다. 너무 강한 빛은 사진을 태워버리고, 너무 약한 빛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지요. 오래 머무는 적당한 빛이 얼굴의 골격을 되살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간을 그런 빛으로 다루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시편의 말처럼,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 이 한 문장이 붉은등처럼 마음 한쪽을 비출 때, 숨이 조금 길어지고, 현상액 속의 초조함도 잠잠해집니다.
사진의 마지막 과정은 물로 헹구어 내는 일과 말리는 시간입니다. 요란한 바람보다 조용한 공기가 제 몫을 할 때가 많습니다. 물방울이 가장자리에서부터 사라지고, 종이는 다시 가벼워집니다. 그 사이 사진가는 다음 장을 준비해 두지요. 우리 안에도 그런 건조의 시간이 있는 듯합니다. 설명하고 해명하려는 마음이 잠시 물러나고, 잔상들이 스스로 가라앉을 틈이 생길 때, 말이 없어도 이해에 가까워지는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유난히 소란했던 하루가 밤의 온도 속에서 천천히 마를 때, 보이지 않던 결이 문득 손끝으로 전해지는 법입니다.
완벽하게 선명한 사진만이 좋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초점이 약간 빗나간 장면이 의외로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했지요. 그 흐림 속에서 사진 밖의 소리, 찍히지 못한 체온, 장면 사이의 간격이 더듬어집니다. 삶의 여백도 그러합니다. 모든 것을 다 밝히려는 마음이 오히려 빛을 태워버릴 때가 있고, 미완성처럼 남겨둔 부분이 다음 걸음을 지켜낼 때가 있습니다. 가장자리의 빈 칸은 실패의 흔적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빛을 위한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새벽이 가까워지면 붉은등은 꺼지고, 말라 있던 사진들이 한 장씩 카운터 위에 놓입니다. 어떤 얼굴은 오래 기다린 미소를 드디어 얻고, 어떤 풍경은 그제야 자기의 먼지를 사랑스럽게 드러냅니다. 오늘의 우리도 어쩌면 그럴 것입니다. 아직 물속에 있는 장면이 있다면, 그 또한 한 장의 이야기로 완성되어 가는 중이라는 뜻이겠지요. 집게가 남긴 작은 자국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흔적이야말로 이 하루가 정말로 지나갔다는 표식이 되어, 마음 깊은 서랍 속에 조용히 눌러 앉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