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추 한 알의 숨

📅 2026년 05월 23일 07시 02분 발행

늦은 저녁, 동네 수선집 문을 밀자 작은 종이 맑게 울렸습니다. 오래된 나무 서랍들이 층층이 놓여 있고, 투명한 통마다 여러 해를 건너온 단추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빛을 오래 머금은 듯한 갈색, 바닷빛을 닮은 파란색, 표면이 살짝 긁힌 은빛까지, 모양도 크기도 모두 달랐습니다. 저마다의 자리가 있는 듯 아무 말 없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코트에 달린 단추 하나가 사라져, 빈자리가 자꾸 눈에 걸렸습니다. 수선집 의자에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데, 형광등이 낮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가게의 호흡처럼 들렸습니다. 주인 어르신이 제 코트를 들춰 보시더니, 서랍을 열고 닫으며 단추들을 천천히 골라내셨습니다. 똑같은 것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운 듯했습니다. 그러다 아주 닮은 것을 하나 손가락 끝에 올려 보여 주셨습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아도, 이게 제일 잘 어울릴 겁니다.” 그 목소리에는 오래 손을 움직여 온 사람의 확신이 실려 있었습니다.

바늘귀에 실을 꿰고, 섬유를 통과하는 순간마다 작은 소리가 났습니다. 바늘이 드나들며 남기는 규칙적인 리듬이 마음을 가라앉혔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그저 단추 하나가 다시 자리 잡는 일이었지만, 안쪽에서는 매듭 하나가 단단히 묶였습니다. 옷을 뒤집으면 보이는, 그 작고 단정한 매듭이 옷의 하루를 지켜 줄 것입니다. 문득 기도가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겉으로는 눈에 띄지 않지만, 안쪽 어딘가에 묶인 매듭이 하루를 흩어지지 않게 붙들어 주는 일.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4)라는 말씀이 단추와 실 사이를 조용히 지나가는 것처럼 스며들었습니다.

똑같은 단추를 찾지 못해도, 가장 가까운 것을 골라 꿰매는 일이 있습니다. 삶에도 그런 시간이 있습니다. 사라진 것을 완벽히 되돌릴 수는 없어도, 닮은 무엇을 정겹게 받아들여 다시 걸어가는 일. 그 선택에는 체념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보겠다는 다정한 결심이 담기는 것 같습니다. 새로 달린 단추는 이전의 시간과 오늘의 온도를 나란히 품으며, 빈자리를 부드럽게 덮어 줍니다. 약간의 차이가 오히려 어울림이 되는 순간을 본 듯했습니다.

어르신은 바늘을 빼고 마지막 매듭을 꼭 눌러 주셨습니다. 손끝에 남은 실을 툭 잘라내자, 코트는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 같았지만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습니다. 잃어버린 것의 이름을 오래 불러 보던 자리에서, 다시 이어진 촘촘함이 제게 말을 건네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도 무언가를 단단히 묶어 두어야 잠들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선집 문을 나서니 밤 공기가 차분했습니다. 코트 앞섶을 천천히 모아 잠그며 걸었습니다. 단추 하나가 제 몸을 조용히 붙들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억지로 잡아매는 느낌이 아니라, 흩어지려는 마음이 제 자리를 기억하도록 도와주는 손길 같았습니다. 호주머니 속에는, 어르신이 “혹시 몰라서”라고 건네신 여분의 단추가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작은 원을 손바닥에 올려 보면서, 오늘 하루에도 보이지 않는 매듭들이 곳곳에서 저를 붙들어 주었다는 걸 생각했습니다. 완벽히 같을 수는 없어도, 충분히 함께가 될 수 있다는 조용한 확신과 함께요.

집에 돌아와 코트를 걸 때, 단추는 더 이상 눈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제 할 일을 다할 때, 비로소 마음이 넉넉해지는 듯했습니다. 내일 아침에도 이 단추를 잠그며, 오늘 묶어 둔 작고 단단한 매듭들을 떠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하루를 흩어지지 않게 잡아 줄 거라는, 말없이 따뜻한 믿음과 함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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