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5월 28일 07시 02분 발행
출근 시간이 막 기울기 시작한 골목에서 버스를 탔습니다. 차창에는 밤새 묻은 물방울 자국이 남아 있었고, 좌석 등받이 사이로 구겨진 신문 조각이 조용히 흔들렸습니다. 단말기에 카드를 대니 익숙한 삑 소리가 났고, 제 뒤에 서 있던 분의 카드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른 음색으로 울렸습니다. 모두가 아는 그 짧은 알림 뒤에 작은 민망함이 따라왔고, 기사님은 룸미러 너머로 “천천히 하셔도 돼요”라고 말하듯 눈을 한번 맞추었습니다.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인 사람이 자리에 앉자, 버스는 다시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때 문득, 이 소리들이 오늘 제 마음의 잔액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말 한마디 건네볼 여유의 잔액, 마주한 현실을 견딜 힘의 잔액, 낯선 이의 서툼을 기다려 줄 인내의 잔액, 어제의 오해를 풀 수 있는 용서의 잔액. 어떤 날은 아침부터 넉넉한 듯하고, 어떤 날은 이유 없이 ‘부족’이라는 신호가 먼저 켜집니다. 그럴 때면 주머니를 뒤져도 나올 게 없는 사람처럼 마음이 서늘해집니다. 어제는 분명 충분했던 것 같은데, 하룻밤 사이 어디로 다 흘러간 걸까 하고요.
창밖 간판의 글자들이 거꾸로 스쳐 지나가고, 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은 이의 호흡이 규칙을 찾아갑니다. 반대편 창가에는 작은 도시락 통이 보였고, 뚜껑을 꾹 눌러 담은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앞자리의 손가락은 반지를 살짝 굴리며 무언가를 헤아리는 표정이었고, 젊은 학생은 무릎 위 공책 모서리를 손끝으로 문지르며 어딘가의 문장을 떠올리는 듯했습니다. 사람마다 오늘의 계산법이 다른 얼굴로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부족하다는 신호가 켜진 날에도, 생각지 못한 충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고 난 뒤 길게 남는 미소 하나, 처음 보는 이에게서 건네진 말없는 배려,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눈길을 채우는 은행나무 잎의 마지막 빛깔. 이런 것들이 얇은 케이블처럼 조용히 마음에 연결되어, 방전된 줄 알았던 자리에서 미약한 불빛을 다시 켭니다. 그 불빛은 크지 않지만, 다음 정류장 이름이 전광판에 뜰 때까지는 충분히 버티게 하는 정도의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태복음 6:32)라는 말씀이 버스 천장의 미등처럼 은근히 따라붙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아신다는 말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시겠다는 약속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만큼의 힘, 지금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빛, 말문이 막힌 자리에 서 있도록 허락되는 침묵 같은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느끼는 부족함이 부끄러움이 아니라, 채워질 자리를 남겨둔 신호일지 모른다는 생각도 거기에서 나옵니다.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누군가는 내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탑니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누군가의 무게가 조용히 이어받습니다. 마음의 잔액도 그렇게 건네받고 건네주며 하루를 통과하는 것이겠지요. 저는 가끔, 단말기의 삑 소리가 합격도 탈락도 아닌, 그저 ‘지나가도 좋다’고 알려 주는 중립의 종소리로 들립니다. 오늘도 그 소리에 맞춰 호흡이 정리되고, 다음에 울릴 작은 신호음을 기다리게 됩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치고, 손안의 카드는 미지근한 체온을 품고 있습니다. 잔액을 다시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만 같은 아침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드러난 자리에서 오히려 사람의 얼굴이 선명해지고, 소리 없이 건네진 다정이 제 몫의 충전이 되곤 했다는 기억 때문입니다. 어쩌면 오늘의 길에도 그런 조용한 보충이 어딘가 숨어 있겠지요. 불완전한 잔액으로도 충분히 도착하는 날이 있다는 사실이, 가느다란 안심이 되어 발걸음을 가볍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