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의 안부

📅 2026년 05월 29일 07시 00분 발행

동네 안경점 문을 밀고 들어서니 둥근 연마석이 돌아가는 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얇은 물줄기가 렌즈를 적시고, 내려앉은 미세한 가루가 조용히 씻겨 나갔지요. 안경사님은 하얀 왁스 펜으로 렌즈 한가운데 작은 점을 찍고, 제 얼굴을 잠깐 바라보며 동공 사이의 거리를 잰 뒤, 프레임을 따뜻한 바람 앞에 살짝 내밀었습니다. 어느새 딱딱하던 테가 유연해져 모양을 다시 받아들이고, 렌즈는 각도와 중심을 맞추며 제 눈과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의 초점이 흐려지는 때가 잦습니다. 가까운 것이 멀게만 느껴지고, 분명해야 할 것이 겹쳐 보이는 시간들이 있지요. 사람의 말이 진심인지 피로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오늘의 할 일이 내일의 염려와 겹쳐 하나의 그림자처럼 번집니다. 그럴수록 더 또렷하게 보려고 애쓰게 되지만, 힘을 줄수록 글자는 더 흔들리고, 마음의 유리는 김이 서리듯 뿌옇게 변해갑니다.

안경사님은 급하지 않았습니다. 렌즈를 억지로 밀어 넣지 않고, 먼저 온기를 건네 프레임의 고집을 풀어주었습니다. 중심을 맞춘다며 눈을 찡그리게 하지 않고, 제 시선이 머무는 지점을 조용히 확인했습니다. 그 손길을 바라보니, 신앙의 길에서도 누군가 우리를 그렇게 다루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선명함보다 먼저 온기를 주십니다. 판단을 곧장 조이는 대신, 굳어 있는 마음자리를 따뜻하게 하시고, 보려고 안간힘 쓰는 눈빛에 쉼을 허락하십니다. 사도는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라고 말했지요. 희미함이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아직 다 보지 못한 것을 향한 여백이 거기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연마석이 천천히 돌아가며 흠집을 깎아낼 때, 스치는 마찰의 소리가 오래 묵은 생각들을 데려왔습니다. 우리 삶에도 지우기 어려운 자국들이 남아 있습니다. 성급한 말, 쓸쓸한 오해, 어쩔 수 없었다고 넘겼지만 마음에선 여전히 모난 부분. 그것들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도, 빛은 다른 길을 찾아 통과합니다. 미세한 긁힘 때문에 밤의 가로등이 번져 보일 때가 있듯, 상처가 있는 자리에서 오히려 부드러운 광채가 피어나는 순간도 있더군요. 완벽하게 매끈해야만 선한 것이 비추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새 렌즈를 끼우고 바깥으로 나서니, 가을 해가 낮게 기울어 벽돌 사이사이에 금빛을 부어 넣고 있었습니다. 먼지 한 톨까지 또렷하다기보다, 각자 있어야 할 자리에 고요히 자리 잡은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하루의 굴곡도 정돈된 사실로 돌아오고, 마음은 다 설명할 수 없는 평온에 묶였습니다. 선명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내 시선을 무리하게 몰지 않고, 맞춰질 때까지 기다려 준 온기가 내 안에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때로 우리는 진실을 더 똑바로 보기 위해 스스로를 너무 세게 조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빚으시는 분의 손길은, 재촉보다 정렬에 가까워 보입니다. 불필요한 힘을 조금 덜어내고, 흔들리는 중심을 다시 확인하는 동안, 세상은 천천히 윤곽을 드러냅니다. 그 사이, 아직 흐림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는 눈빛이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안경점 유리문에 비친 얼굴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 저녁이었습니다. 선명함이 은혜가 될 때도 있고, 은은함이 은혜가 될 때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든 괜찮다는 듯, 빛은 결국 제 길을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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