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죽이 쉬는 동안

📅 2026년 05월 30일 07시 01분 발행

새벽이 부엌에 먼저 와 있었습니다. 불을 켜지 않아도 싱크대 위 그릇들은 자기 자리를 알고 조용히 빛났고, 물 주전자는 낮은 소리로 데워질 때를 기다렸습니다. 밀가루와 소금, 미지근한 물과 작은 이스트 한 꼬집을 섞어 그릇에 붓자,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이상하리만큼 다정했습니다. 밀가루가 물을 마시는 동안 마음도 숨을 골랐습니다. 서둘러 치대지 않고, 조금 접고 조금 눌러 주며, 숨이 들고나는 걸음에 맞추어 반죽이 제 길을 찾는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젖은 면보를 덮어 주자, 비로소 일은 반죽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은 잘 보이지 않는 쪽에서 시작됩니다. 주전자가 한 번 울고, 집 안 어딘가에서 시계가 짧게 똑딱거리고, 복도가 깨지 않는 그림자처럼 길어지는 동안, 그릇 안에서는 우리가 목격할 수 없는 세심한 변환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말이 적을수록 일이 더해지는 시간, 손을 놓을수록 모양이 잡혀 가는 고요가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씨앗의 비유가 떠오릅니다.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가 어떻게 그리 되는지 알지 못하느니라”(막 4:26-27). 씨앗처럼, 이스트도 틈을 찾아 작은 호흡으로 반죽을 밀어 올립니다. 우리는 그 과정의 내부를 알지 못하지만, 조용한 부풀음은 어느 순간 자신을 드러냅니다. 마음에도 반죽 그릇이 하나씩 놓여 있는 때가 있습니다. 서러운 말이 채 가라앉지 않아 겉으로는 말끔해 보이나 속이 질척일 때, 사과의 말이 목구멍에서 오래 머뭇거릴 때, 해답을 구하려고 책장을 넘기고 또 넘겨도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마다 무엇이든 당장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앞서지만, 삶은 때로 면보를 얹어 두는 쪽을 선택하게 합니다. 따뜻함과 시간, 두 가지가 손보다 먼저 가 일을 이룹니다. 어느 날은 그저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묻어 두었던 작은 일 하나를 정리하는 사이, 마음의 표면이 매끈해지는 순간이 오곤 합니다. 반죽은 과히 만지면 질겨지고, 너무 오래 두면 산으로 갑니다. 삶도 그렇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붙들어야 할 때와 놓아야 할 때 사이의 간격은 짧지 않습니다. 그러나 놓아둔 자리에서 은근히 일하는 온기, 말과 말 사이에서 발효되는 이해, 눈을 감고 건너가는 한숨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용기가 분명 존재합니다. 그 일을 누가 시작하셨는지 설명할 언어는 부족해도, 내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조용히 확신을 건넵니다. 면보를 걷는 순간은 놀랍도록 소박합니다. 그릇의 둥근 등판이 조금 더 의젓해졌을 뿐인데, 손가락 끝으로 꾹 눌러 보면 부드럽게 자국이 남습니다. 과장이 없습니다. 그 자국을 보며 오늘 하루를 떠올렸습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던 작은 결심, 대답을 미루던 메시지에 건넨 짧은 안부, 다시 꺼내 쓴 오래된 이름 하나.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빵의 향기가 약속하듯, 보이지 않는 시간이 내일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마음을 따뜻하게 했습니다. 믿음은 가끔 질문을 접어 두는 기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설명보다 기다림이 앞서고, 의욕보다 숨 고르기가 먼저 오는 태도입니다. 나를 재촉하는 마음을 한 발 물리고, 오늘의 따뜻함이 어디서 오는지 조용히 알아차릴 때, 반죽의 속에서 일하던 그 힘이 내 안에도 스며 있었다는 사실이 손에 잡힙니다. 소리에 기대지 않고, 무게로도 측정할 수 없지만, 분명한 변화가 자리를 넓혀 갑니다. 오늘이 끝날 무렵, 부엌 어딘가에 남아 있을 밀가루 가루처럼 하얀 흔적을 생각합니다. 지우개 가루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일의 빵을 예고하는 믿을 만한 표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작은 재료를 잊지 않으신다는 조용한 신호 같기도 합니다. 반죽이 쉬는 동안 우리도 조금 쉬어 갔고, 그 사이에 할 수 없었던 일이 자라났습니다. 이 고요가 각자의 자리에서 은은히 이어지기를, 오늘 덮어 둔 면보의 온기가 마음에도 머물기를, 그래서 누구의 표정 한 귀퉁이라도 조금은 더 부드러워지기를 바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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