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5월 31일 07시 00분 발행
동네 큰길에서 한 걸음 비켜선 자리, 손바닥만 한 간판이 달린 시계방이 있습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면 기계오일의 얇은 냄새가 먼저 반기고, 낡은 나무 책상 위에는 손가락만 한 드라이버와 작은 나사들이 둥글게 모여 있습니다. 시곗공은 한쪽 눈에 루페를 끼고 숨을 가늘게 고르며, 떨림 없이 초침을 붙잡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수는 적고 손길은 다정했습니다. 그가 살짝 고개를 기울일 때마다, 서랍 속에서 꺼낸 부품들이 서로의 자리를 되찾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습니다.
오늘 저는 오래 사용한 가죽줄을 갈아 달려고 그곳을 찾았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이곳저곳에서 나는 박자를 세어 보았습니다. 벽에 걸린 알람시계는 느긋했고, 유리 진열대 속 얇은 손목시계는 조급했습니다. 들여다보면 모두가 ‘딱딱’ 소리를 내고 있지만, 한 시계도 똑같은 박자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시곗공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람도 그렇잖아요.” 그 한마디에 방 안의 소음이 부드럽게 가라앉았습니다. 누군가는 느려도 뒤처진 게 아니고, 누군가는 빨라도 초조한 게 아니었습니다. 각자의 박자 속에서 하루가 익고 있었습니다.
고장난 시계가 다시 살아나는 걸 몇 번이나 보았습니다. 꼭 부품이 빠져서가 아니라, 아주 미세하게 어긋난 톱니 하나가 오래된 피로를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서 배운 건 정확함보다 견딤이었습니다. 작은 오일 한 방울이 마찰을 줄이고, 손끝의 참을성이 초침을 다시 앞으로 밀었습니다. 삶에서도 그러합니다. 관계의 톱니 사이에 먼지가 끼듯, 말 한마디 사이에 기억의 모래가 스밉니다. 커다란 수리가 필요한 것 같아도, 때로는 숨 한 번 고르고 마음 안쪽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 주는 일만으로도, 어긋남이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더군요.
시편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 31:15). 이 한 구절이 시계방의 공기와 묘하게 겹쳐졌습니다. 우리의 때가 손에 있다는 말은, 시간의 끈을 누군가 꼭 쥐고 조급하게 당긴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시곗공이 귀를 기울여 각 시계의 호흡을 듣듯, 우리의 하루를 건성으로 넘기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다는 뜻 같았습니다. 다급한 박자도, 늘어진 박자도 버려지지 않고, 각각의 고유함을 잃지 않도록 손보아 주시는 손길 말입니다.
시곗공은 제 시계를 살펴보더니, 벽에 걸린 시계와 비교해 아주 조금 늦게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금 늦게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듯, 그의 목소리에는 꾸지람 대신 미소가 묻어 있었습니다. 삶의 몇 분이 느리게 흐른다 해서 망가진 하루가 되지는 않는다는, 그 단순한 진실이 가슴을 너그럽게 비워 주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잠깐 멈춰 서 있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다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돌아오곤 합니다. 어쩌면 멈춤은 패배가 아니라 조율의 시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죽줄을 바꾼 시계가 손목에 얹히자, 금속의 차가움이 피부의 온도를 따라서 서서히 따뜻해졌습니다. 살결 아래로 심장이 박동하고, 그 위에서 초침이 작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두 박자가 서로를 알아보는 듯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저는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어디선가 누군가는 빠듯한 일정에 마음을 다 쓰고, 누군가는 의미 없이 늘어진 몇 시간을 겨우 붙잡고 있겠지요. 그 모든 순간이 헛되지 않다는 걸, 누군가는 조용히 기억해 주고 있다는 걸, 그 사실만으로도 숨이 깊어집니다.
시계방 문을 나설 때, 유리문에 스친 제 얼굴이 한 박자 쉬어 보였습니다. 그 잠깐의 쉼이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우리 각자의 안에 흐르는 박자를, 억지로 같게 만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조금 늦어도 괜찮고, 잠시 서 있어도 괜찮다는 문장이 가슴 어딘가에서 천천히 자리 잡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건너는 손길이 있다는 믿음이, 오늘의 시간을 다정하게 붙잡아 줍니다. 이 조용한 확신이 손목 위에서 계속 뛰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