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를 맡기던 날

📅 2026년 06월 10일 07시 00분 발행

골목 안쪽에 불빛이 낮게 머무는 금은방이 있습니다. 유리 진열장 너머로 스탠드 조명 하나가 환히 책상 위를 비추고, 그 아래에 시계공 어르신이 앉아 계십니다. 한쪽 눈에 작은 확대경을 끼우고, 손끝은 떨림 없이 미세한 나사를 만집니다. 방 안 공기에는 금속과 기름의 냄새가 얇게 배어 있고, 벽에 걸린 시계들은 제각각의 박자로 살아 있습니다. 어떤 초침은 서둘러 걷고, 어떤 것은 뒤늦게 따라붙습니다. 그 소리들이 한데 모여, 하루의 심장소리처럼 들립니다.

저는 멈칫거리던 손목시계를 들고 문을 열었습니다. 종소리가 가볍게 울리고, 이름이 적힌 작은 영수증을 받아 기다리는 의자에 앉았습니다. 의자 아래로 햇빛이 매대 유리에서 굴절되어 바닥에 길게 누워 있고, 아주 가느다란 먼지들이 빛 속에서 떠다닙니다. 어르신은 제 시계를 조심스레 열어 안쪽을 들여다보시더니, 얇은 붓으로 무엇인가를 쓸어내리고, 핀셋으로 조그만 부품을 다듬어 제자리에 놓으십니다. “시간이 어긋날 때는 대개 안쪽에서 작은 것 하나가 걸려 있지요.” 낮고 단정한 목소리가 조용히 가게를 채웁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문득 제 삶의 하루도 그렇다는 생각이 생깁니다. 크게 난 상처보다, 보이지 않는 가루 한줌 같은 것들이 틈새에 끼어 움직임을 방해할 때가 많았습니다. 미루어 둔 안부, 마음에 걸리는 한 문장,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 그 작은 것들이 우리 시간을 조금씩 어긋나게 하고, 남의 박자와 발을 맞추지 못하는 순간을 만듭니다. 서두르면 맞아질 것 같다가도, 더 흐트러지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맡김’이라는 말이 오래 귀에 남습니다. 맡기면 손의 온도가 오고, 숨 고르기가 뒤따르고, 기다림이 자리를 펴는 법입니다.

시편에서 한 문장이 조용히 떠오릅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 말은 짧은데, 그 안에 삶의 길고 짧은 계절들이 다 들어 있는 듯합니다. 모든 것을 당장 바로잡는 능력이 아니라, 내 시간을 내가 끝까지 움켜쥐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이 그 문장에 깃들어 있습니다.

시계를 잠시 손목에서 풀어 맡기고 가게를 나서니, 손목이 가볍고 허전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발걸음은 덜 분주했습니다. 가게 유리문 너머로 어르신이 마지막으로 귀를 시계에 가까이 대고 소리를 듣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무언가를 고칠 때, 먼저 들어야 한다는 사실. 내 안의 소리도 아마 그렇게 가까이 귀를 대야 또렷해지는 것이겠지요.

어떤 날은 말수가 줄고, 듣는 시간이 자연히 늘어납니다. 주방에서 물이 데워지는 소리, 현관에서 열쇠가 맞물릴 때 나는 작은 클릭, 엘리베이터 층수가 하나씩 바뀌는 표시음. 그 모든 미세한 신호들이 하루의 톱니를 다시 맞물리게 합니다. 속도가 남과 다르더라도 그 차이가 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마음 한가운데 얇은 기름 한 방울이 스며드는 듯 매끄러워집니다.

나중에 수리가 끝난 시계를 받아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니, 초침이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큰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그렇게 조용한 시작이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사실 하나만 또렷해도, 하루가 조금은 견고해지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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