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6월 16일 07시 01분 발행
새벽 다섯 시, 불 꺼진 골목에 제과점 뒷문만 환하게 켜져 있습니다. 문틈으로 뜨거운 김과 버터 냄새가 스며 나옵니다. 작업대 위로 반죽이 쿵, 하고 내려앉을 때마다 먼지 같은 밀가루가 가볍게 떠오르고, 작은 타이머가 고운 종소리를 남깁니다. 손등에 밀가루를 묻힌 제빵사는 반죽의 온기를 살피며 오래 바라봅니다. 벽시계의 초침이 아무리 바쁘게 달려도, 이곳에서는 반죽이 오늘의 시간을 먼저 정하는 듯합니다. 급함보다 알맞은 온기와 기다림이 앞서는 자리입니다.
가끔은 우리의 삶도 그 반죽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말로는 다 풀리지 않는 마음의 매듭, 병실 문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던 발걸음, 생각만 해도 뜨거워지는 어떤 사과의 문장들. 변화와 해답을 서둘러 불러내고 싶어질 때, 안에서 아직 무르익지 않은 온도가 감지되기도 하지요. 밖으로 보기에는 조용한데, 속에서는 작은 기포들이 하나둘 올라오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과 사소한 기억들 사이에서, 우리도 자신만의 발효를 겪어 가는 셈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를 누룩에 비유하셨지요(마태복음 13:33).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어느 순간 반죽 전체에 스며드는 힘을 떠올리게 됩니다. 믿음도, 위로도, 화해의 마음도 그 비슷한 길을 걷는 것 같습니다. 거창한 환호보다, 보이지 않는 시간의 내공이 있을 때 비로소 모양을 찾는 법이지요. 오늘 우리 안에서 조용히 일하는 그 누룩을 누구는 ‘기도’라 부를 것이고, 누구는 ‘인내’라 부를지요. 이름이 무엇이든, 그 움직임이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위로가 됩니다.
때로 반죽이 예상과 달리 꺼져 내리는 새벽도 있습니다. 습도와 온도를 맞추었는데도 영 마음을 주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제빵사는 그 덩어리를 버리지 않고 다시 모읍니다. 젖은 천을 덮고, 온기를 조용히 보태며, 한참을 말없이 기다립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럴 때가 있지요. 맥이 풀린 말들, 번번이 어긋나는 계획, 되돌아온 오해 하나. 급히 구워내려 들수록 더 질겨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모아 덮어둘 자리를 찾아보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게으름이 아니라 믿음 쪽에 가까운 숨고르기일지요.
오븐 문이 열리는 순간 골목의 공기가 달라집니다. 갓 구운 빵의 온기가 종이봉투를 통해 손바닥으로 전해지고, 봉투가 스치는 소리만으로도 작은 포근함이 번집니다. 그 빵이 누구의 아침 식탁에, 누구의 점심 도시락에, 혹은 누구의 긴 하루 끝에 닿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한 사람의 묵묵한 기다림과 손길이, 보이지 않는 배고픔을 채우는 쪽으로 흘러간다는 사실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우리 삶의 사소한 친절과 짧은 안부, 밤마다 접어 올리는 작은 기도도 어쩌면 그런 향기를 품고 있을지요.
오늘 당신의 마음에서는 어떤 반죽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을까요. 당장 모양을 갖추지 못한 일이라도, 아직 한 번 더 기다리는 온도를 요구하는 중일 수 있겠습니다. 조급함이 문을 두드려도, 반죽은 자기만의 속도를 지키곤 합니다. 하나님은 그 속도를 아시는 분이라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필요한 발효를 틈틈이 도우시는 듯합니다. 새벽 공기 속에 부유하는 밀가루 가루에 햇빛이 닿을 때 잠깐 반짝이듯, 보이지 않게 빛나는 시간이 오늘도 당신 곁을 지나가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