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의 온기

📅 2026년 06월 20일 07시 00분 발행

재래시장 중앙 통로 끝에, 작은 조명 아래서 시간을 고치는 시계방이 있습니다. 유리 진열장에는 낡은 포켓시계와 줄이 바랜 손목시계들이 눕혀 있고, 주인어른은 돋보기를 한쪽 눈에 끼운 채 바늘보다 가는 드라이버를 움직이십니다. 저는 오래전에 서랍 속에 눕혀 두었던 시계를 들고 갔습니다. 한때 매일 차고 다녔는데, 분주함 속에서 어느 날 벗어 두고는 그대로였습니다.

주인어른은 까만 벨벳 매트 위에 시계를 살포시 올려놓고 귀를 대셨습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침묵이 잠시 흐른 뒤, 그분의 손끝이 태엽을 천천히 감기 시작했습니다. 얇은 금속이 서로를 스치며 모여드는 느낌이 손끝으로도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주 작은 소리가 어둠 속에서 깨어나듯 들렸습니다. 탁, 탁, 탁. 바늘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니라, 안쪽에서 시간 자체가 숨 쉬는 듯한 리듬이었습니다.

“고장은 아닙니다.” 주인어른이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그저 오래 감아주지 않아서 멈춘 겁니다. 이 시계는 하루에 조금만, 무리하지 않게 감아주면 맑은 소리가 길게 갑니다.” 그러고는 뒷면을 닫으며 덧붙이셨습니다. “세게 감아도 금방 멈추고, 잊어버리면 어느새 눕습니다. 제일 좋은 건 손에 익은 만큼만 자주 만져주는 거지요.”

그 말을 듣는데,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졌습니다. 멈춘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미루어 둔 안부, 다 하지 못한 말, 내일로 밀어 둔 감사. 고장이 아니라 감김이 풀린 것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시간을 고치는 분의 손을 보면서, 우리를 붙드는 손길을 떠올렸습니다. 그 손길은 다그치지 않고, 잊힌 박자 위로 조용히 앉아 작은 숨을 되돌려 주십니다. “내 때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오래전에 외워 두었던 그 한 구절이, 시계방의 은은한 불빛과 함께 마음으로 내려앉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계는 손목 위에서 자기만의 걸음으로 움직였습니다. 사람마다 걷는 속도가 다르듯, 각자의 시간도 다르게 박동한다는 사실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이는 빠른 걸음으로도 평온하고, 어떤 이는 느린 걸음으로도 성실합니다. 중요한 것은 보폭이 아니라, 안쪽에서 울리는 고유한 소리가 어지럽지 않도록 지켜 주는 일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소리는 누군가의 인정으로 커지지 않고, 비교로 깎이지도 않지요. 다만 조금의 온기, 한 줌의 침묵, 짧은 숨고르기 같은 것으로 다시 또렷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이 되어, 시계를 작은 접시 위에 내려두었습니다. 귀를 가까이 대니 낮 동안 열심히 살아낸 시간들이 차분하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일정 중에 눈에 띄는 성취가 없었다 해도, 이 잔잔한 소리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하루가 제대로 흘렀다는 증거는 화려한 결과가 아니라, 안쪽 리듬을 잃지 않았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멈추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멈춘 자리에서야 들리는 소리, 놓친 사이에 자라난 그리움, 그리고 다시 감아야 할 작은 태엽. 시계방에서 배운 것은 기술의 기묘함이 아니라, 보살핌의 속도였습니다. 서둘러 고치지 않고, 살짝 만져 주며, 지나치지 않는 손길. 그 손길을 닮은 하루가 있다면, 우리의 시간도 한결 맑은 음으로 흘러가겠지요.

불을 끄기 전, 마지막으로 시계를 한 번 더 들어 올렸습니다. 탁, 탁, 탁. 그 리듬에 마음을 기대어 보니, 오늘과 내일이 서로 닮은 온기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대단한 약속은 없어도 괜찮았습니다. 작은 소리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그 자리를 붙드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사실 하나면, 밤은 충분히 깊고, 새벽은 또 제때 도착할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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