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식는 동안

📅 2026년 07월 07일 07시 01분 발행

새벽을 조금 지난 시간, 동네 제과점 진열대에 금빛 식빵이 줄지어 올려졌습니다. 갓 꺼낸 빵은 고요한 김을 올렸다 내리며, 껍질이 아주 작게 수축하는 소리를 냅니다. 제빵사는 장갑 낀 손으로 빵을 식힘망에 옮겨 놓고, 서둘러 봉지에 담지 않습니다. 그 사이 유리문을 드나드는 사람들 사이로 버터와 효모 냄새가 번지고, 누군가는 종이컵 커피를 손에 쥔 채, 기다림의 향을 천천히 들이마십니다.

빵은 구워낸 뒤 잠시 식는 시간이 있어야 속살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너무 뜨거울 때 칼을 대면 결이 무너지고, 맛도 성급해집니다. 한데 그 이치가 우리의 마음에도 닿는 것 같습니다. 삶의 뜨거운 순간 뒤에는 식힘의 시간이 뒤따릅니다. 기쁨이든 서운함이든, 곧바로 베어 물면 입천장이 데듯 마음이 상하기 쉽지요. 그러나 조금의 식음 속에서, 말의 결이 가지런해지고, 감정의 수분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한 장년이 병실에서 밤을 지새우던 일을 들려주셨습니다. 수술 결과를 막 들은 그 날, 마음은 곧장 어떤 답을 내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문장도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셨지요. 그 밤에는 ‘지금은 결정을 미루자’는 말이 위로가 되었고, 며칠이 지나자 전혀 다른 빛깔의 선택이 보였다고 합니다. 열이 빠져 나가자 비로소 보이던 길이었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때에 아름답게 하셨다”(전도서 3:11). 때는 단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안과 밖의 온도가 맞춰지는 숨결 같은 것일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결을 만지시고, 서둘러 잘라내고 싶은 마음을 잠시 식힘망 위에 올려두게 하십니다. 그동안 삶의 겉과 속이 서로를 알아보고, 다름이 덜 날카롭게 느껴집니다.

제과점의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쇼케이스 속 작은 빛들을 한 번 더 바라봅니다. 누구는 아이의 지퍼를 채워주고, 누구는 가방 속 카드지갑을 손끝으로 확인합니다. 그 소소한 틈에서 마음이 제 호흡을 되찾습니다. 말하지 않은 말들이 가라앉고, 내 안에서만 커지던 걱정이 실제 크기로 돌아옵니다. 식어간다는 것은 식어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지나치게 뜨거웠던 부분이 제 온도를 회복한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신앙이 그 식힘망과 닮았다고 믿습니다. 기도는 종종 커다란 해답을 곧장 가져다주지 않지만, 허둥대던 마음을 올려놓을 자리 하나는 내어줍니다. 그 자리에 놓인 마음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향을 잃지 않으면서도, 다루기 좋은 온도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같은 말도 하루를 건너 들으면 덜 쓸쓸하고, 같은 표정도 밤을 지난 뒤에는 조금 더 너그러워 보입니다.

잠시 뒤, 제빵사는 식은 빵을 조심스레 봉지에 담습니다. 막‑뜨겁지 않은 대신, 향이 또렷합니다. 한 손님이 작은 고개 끄덕임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가게 문을 열어 나갑니다. 봉지 안에서 묵직한 온기가 팔로 전해지고, 그 온기는 길 모퉁이가 아닌 집 안의 식탁까지 천천히 스며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삶 어딘가에, 서둘러 자르지 않고 잠시 올려둘 자리가 하나쯤 마련되어 있기를 생각합니다. 그 사이 마음의 결이 예쁘게 가라앉아, 우리가 하는 말과 표정이 서로에게 빵 냄새 같은 따뜻함으로 남을 수 있기를, 그 조용한 향으로 하루가 시작되기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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