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 냄새와 발걸음의 기억

📅 2026년 07월 11일 07시 00분 발행

골목 끝, 오래된 간판 밑에 작은 구두수선소가 있습니다. 낮은 스탠드등이 비스듬히 작업대를 비추고, 송진 냄새가 고요하게 공기 속을 맴돕니다. 주인어른의 손이 낡은 밑창을 살피며 가는 송곳으로 자리를 내어 줍니다. 왁스 먹인 실이 바늘에 걸려 통과할 때, 두 가닥이 교차하며 내는 마찰음이 낮게 울립니다. 탁, 탁, 고무망치가 마지막 단을 눌러 붙일 때마다, 오늘의 시간이 한 땀씩 고정되는 듯합니다.

저에게도 오래 신은 구두 한 켤레가 있습니다. 가을비 진 골목을 여러 번 통과했고, 웃음 많은 자리와 서늘한 소식을 함께 건넜습니다. 밑창을 떼어낸 자리에는 제 발모양대로 살짝 패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무게가 오래 누워 쉬었던 자리, 서둘러 걸었던 날의 경사가 고스란히 박혀 있습니다. 수선공은 그 자리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이 구두가 다녀온 길을 어림짐작하는 표정입니다. 그리고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한 땀, 또 한 땀, 매듭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게 숨겨 넣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단단함을 준비하는 일. 삶이 여러 번 가르쳐 준 방식도 대개 그와 비슷했습니다.

사람 사이의 말도, 마음속 오래된 그림자도, 금세 새것으로 바뀌지 않더라고요. 다만 기꺼이 기다려 주는 손길이 곁에 있을 때, 닳은 모서리들이 조금씩 둥글어졌습니다. 제가 성급히 잘라내고 싶은 실밥을 그분은 함부로 끊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제 걸음의 습관을 살피듯, 어디에서 더 무게를 주는지, 어떤 바닥에서 자주 미끄러지는지, 조용히 읽어 내셨습니다. 그러고 나서야 매듭을 묶으셨습니다. 크게 자랑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러나 오래 버티게 하는 힘으로요. “그가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편 147:3).

수선대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저는 제 마음의 밑창을 떠올렸습니다. 오래 버티느라 비스듬히 닳은 자리, 말수가 줄어들던 계절, 이유도 모른 채 더디던 발걸음. 그 흔적들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어느새 그 궤적이 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구두의 흠집이 길을 걸었다는 증거이듯, 마음의 흠결도 사랑하고 기대며 참았던 계절들의 증언이었습니다.

수선이 끝난 구두를 받아 들면 처음엔 약간 낯섭니다. 밑창의 탄력이 아직 제 발을 다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며칠 걷다 보면 새로 덧댄 부분과 옛 살림이 서로를 알아갑니다. 착 섞여가는 순간의 촉감, 그 어색한 다정함이 참 좋습니다. 우리 삶도 그렇게 조금씩 맞춰 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버려지는 쪽이 아니라, 고쳐 입혀지는 길. 누군가의 손길 아래서 들숨과 날숨이 다시 박자를 맞추는 일.

오늘의 걸음이 어디로 기울든, 어제의 흔적이 부끄럽지 않게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사실이 위로로 다가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속안의 매듭이 발을 떠받치듯, 드러나지 않는 은총이 마음을 지탱합니다. 골목을 나서며 신발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가 조용히 알려 줍니다. 여전히 걸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전히 함께 꿰매지는 중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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