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이 모르는 무게

📅 2026년 08월 03일 07시 02분 발행

오후 해가 유리벽을 넘어오던 시간, 동네 우체국에 잠시 들렀습니다. 번호표를 뽑아 손에 쥐고 서 있자, 창구마다 익숙한 소리들이 이어졌습니다. 투명 테이프가 끌려나가며 내는 사각사각한 속삭임, 도장이 종이 위에 남기고 떠나는 짧은 ‘탁’, 저울 화면에 불이 켜지며 바뀌는 숫자들. 그 사이로 누군가는 작은 봉투를, 또 누군가는 상자를 내어놓았습니다.

제 앞에는 어르신 한 분이 귤 몇 알과 손편지를 넣은 박스를 올려두고 계셨습니다. “무겁지 않아요.” 미소 섞인 말이 먼저 나왔고, 저울은 곧 162g을 가리켰습니다. 저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 주는 듯했지만, 옆에서 바라보니 그렇지 않아 보였습니다. 귤 껍질에 남은 빛, 글자 사이사이에 머문 숨, 떠올리며 썼을 얼굴의 온기가 저울엔 오르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묶은 끈의 매듭, 그 매듭까지도 무게일 텐데요.

우리 하루에도 저울에 태우기 어려운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말하지 못한 안부, 아직 비워두고 있는 대답, 한밤중에 낱낱이 뒤집어 본 근심. 겉으로는 가벼워 보이는데 돌아서면 어깨가 먼저 기억하는 그 무게들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들은 더 작은 상자를 고릅니다. 부피를 줄이면 비용이 덜 든다는 안내문을 따라, 마음도 가능한 만큼 작게 접어 넣어 보려는 표정이 스칩니다. 저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상자를 닫고 테이프 끝을 찾다가, 잘 보이지 않아 손끝으로 더듬는 잠깐의 정적. 그러다 반짝, 끄트머리가 잡히면 “아, 여기 있었네요.” 그 말에 실린 안도는 누구의 설명보다 정확한 진실처럼 느껴졌습니다.

직원은 늘 묻습니다. 깨지는 것이 있느냐고, 내용물에 위험한 것이 없느냐고. 그 물음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우리 안에도 깨지기 쉬운 것들이 많아서, 겹겹이 싸매 오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래도 창구 위에 올려보면, 상대의 주소와 이름이 또렷해지고, 발송인란에 적은 나의 이름이 어딘가 단단해지는 듯합니다. 보낸다는 일은 어쩌면 나를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해서, 도장이 찍히는 순간, 떠나보냄과 떠나보냄을 허락하는 마음이 맞닿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겉모양을 보거니와 주님은 중심을 보신다”(사무엘상 16:7). 저 문장이 우체국 유리 너머에 적혀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상자의 크기, 우표의 값, 기입란의 반듯함은 화면에 남지만, 상자를 싸던 마음의 떨림은 기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시는 시선이 우리를 지나가고 계신다면, 오늘 저울이 모른 채 통과시킨 무게들도 헛되이 흩어지지 않겠지요.

도장이 남기는 ‘탁’ 소리는 언제 들어도 상쾌합니다. 그 소리에는 출발의 약속이 들어 있고, 기다림을 시작하는 은근한 열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표의 잉크 냄새가 옅게 풍기고, 종이의 결이 손끝에 남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말과 침묵, 눈빛과 숨결에도 보이지 않는 소인이 찍혀서, 오늘이라는 날짜와 함께 누군가의 마음으로 향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창구를 나서는데 유리문에 저녁빛이 더 진해져 있었습니다. 저울 위의 숫자는 사라졌고, 손에 남은 감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마음속에도 무언가가 살짝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계절이 바뀌듯 무게도 이동하고, 오늘 찍힌 소인은 내일을 향해 묵묵히 건너갈 것입니다. 그 길을 아시는 분이 계시다는 생각이 조용히 따라오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설명되지 않아도 충분한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런 순간이 조금 더 가까이 와 있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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