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점의 잔물결

📅 2026년 08월 12일 07시 01분 발행

오후가 기울 무렵, 동네 골목의 작은 안경점에 불빛이 먼저 켜졌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잔잔한 기계음과 함께 투명한 통 안에서 물이 사뿐히 일렁입니다. 세척기 속으로 렌즈가 잠기자 작은 기포들이 금세 피어올라, 오래 묵은 손때와 먼지를 어루만지듯 감싸고 떠올렸습니다. 주인장은 헝겊 대신 기다림을 사용해 렌즈를 닦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세심하게 사랑한다는 건, 때로는 닦아내는 힘보다 기다려주는 시간에 더 기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뒤, 나사 하나를 꼭 맞춘 뒤에 사장님은 얇은 코받침을 바꿔 끼우고 안경을 건넸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던 노신사께서 조심스레 안경을 올리시더니, 표정이 한 톤 부드러워졌습니다. “조금 밝아지셨죠?” 사장님의 가벼운 말에, 손님은 웃음으로 대답했습니다.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은데도, 그 미세한 맑음이 얼굴 전체를 풀어주었습니다. 세상은 그렇게, 한 번에 환해지기보다 미세한 조정과 작은 물결로 서서히 달라지곤 하더군요.

사람의 하루도 렌즈처럼 흐려질 때가 있습니다. 말끝에 남은 서운함, 스스로에게 건넨 엄격한 판단, 미루어둔 일들에 섞인 피로가 얇은 막처럼 쌓입니다. 그때 마음속 어딘가에서 작은 기포가 올라와 우리를 닦아주는 순간이 있습니다. 짧은 침묵, 누군가의 안부를 떠올리는 마음, 처마 끝에 걸린 저녁빛 한 조각이 그런 일을 하기도 하더군요. 교체가 아니라 손봄으로, 버팀이 아니라 고쳐 맞춤으로, 오늘의 시야가 조금씩 맑아지는 경험입니다.

사람을 바라볼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먼저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이 렌즈를 흐리게 만들 때가 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긴 하루와 오래 지닌 사정을 통과해 보려는 눈이 생깁니다. 그제야 보이던 스크래치는 전부가 아니었다는 마음이 듭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시야에서 흐린 자국으로 남아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떠오릅니다. 그 깨달음이 얄팍한 판단을 천천히 지워 줍니다.

오늘 안경점에서 떠오른 한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흐릿하나”(고린도전서 13:12). 흐릿함을 부끄러워하기보다, 그 사이를 지나 여물어 가는 우리의 시간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너무 빨리 선명해지려 애쓰지 않아도, 손길이 닿을 만큼 가까운 자리에서 조금씩 밝아지는 빛이 있으니까요. 하나님은 종종 새 것을 주시기보다, 우리가 아끼는 것을 존중하시며 정성스레 나사를 조여 주시는 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버리지 않고 손대어 주시는 사랑이, 희미함과 맑음 사이를 건너는 다리가 됩니다.

문을 나설 때, 유리문 손잡이의 손때가 해질녘 불빛을 받아 잔금처럼 반짝였습니다. 거리 표지판의 글자도, 이정표의 화살표도, 아까보다 또렷했습니다. 큰 변화는 아니었지만, 발걸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세상이 조금 더 읽히는 저녁, 마음도 조금 더 읽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감각이 오래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바람은 쉬이 스치지만, 이런 미세한 맑음은 천천히 스며드는 법이니까요.

각자의 눈앞에는 저마다의 스크래치가 있겠지요. 오래된 기도 제목, 풀리지 않은 해석, 인정받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자리. 그 위를 지나가는 빛이 오늘은 어떠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완벽히 닦인 렌즈보다, 손길의 기록이 남아 있는 렌즈가 더 믿음직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거기엔 포기하지 않으려는 시간이 깃들어 있으니까요. 그렇게 천천히 밝아지는 저녁을 품에 넣고 돌아오는 길, 마음속 세척기에서도 잔물결이 한동안 멈추지 않았습니다. 여린 파동이 지워낸 것은 얼룩만이 아니라, 서둘러 판단하려던 마음이었습니다.

안경을 고쳐 쓰듯, 오늘을 다시 바라보니 길모퉁이 대신 저마다의 얼굴이 먼저 보였습니다. 하루가 다 닳도록 귀 기울였던 이들의 말이, 저녁빛에 눌어붙은 먼지를 털어낸 것처럼 선명했습니다. 오늘의 맑음이 내일의 확신이 되지 않아도 괜찮겠지요. 우리는 다시 흐려질 것이고, 또다시 닦여질 것입니다. 이 느린 왕복이 우리를 지치게만 하는 건 아닌 듯합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서 마음이 단단해지고, 눈빛은 더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한 겹, 투명함이 생겨나는 것을 느끼며 발걸음을 집으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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