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8월 29일 07시 01분 발행
문턱 낮은 사진관 하나가 있습니다. 겨울 해가 기울 무렵이면 유리문 안쪽 전등이 먼저 켜지고, 천천히 내려진 셔터 사이로 따뜻한 빛이 새어 나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배경천이 레일을 따라 미끄러지듯 펴지고, 얇은 천에 남은 옅은 주름이 조용한 물결처럼 이어집니다. 주인장은 작은 집게로 모서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손끝으로 천을 한번 쓸어 내립니다. 오래 걸리지 않는 동작인데도, 그 사이 가게 안의 공기가 조금 고요해지는 느낌이 납니다.
자리를 바꾸는 것은 늘 배경천만이 아닙니다. 오늘도 여러 얼굴이 들어와 의자에 앉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운전면허를 갱신하는 어르신, 새로 발급받을 증 하나를 위해 몇 분을 떼어내고 앉습니다. 의자의 높이를 맞출 때 어깨가 아주 조금 움츠러들고, 손은 허벅지 위에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렌즈와 마주하는 순간, 각자의 하루가 표정의 가장자리에 살짝 걸립니다. 너무 크게 웃지 않으려는 마음, 다문 입술에 스며 있는 긴장, 눈동자 안쪽의 바쁘던 시간들이 빛을 만나 한 컷의 호흡으로 모입니다.
사진사는 렌즈 앞 유리를 천으로 곱게 닦고, 작은 브러시로 보이지 않는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유리도 그런 식으로 닦이는 때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로는 지우기 어려운 하루의 흐림이, 누군가 조용히 곁에서 번짐을 가만히 닦아 줄 때가 있습니다. 플래시가 예행연습처럼 한 번 터지고, 가게 안의 소리가 조금 더 낮아집니다. 그 다음 찰칵 하는 소리는 크지 않지만, 듣는 이의 심장 속으로 또렷이 들어옵니다. 그 순간에는 누구도 포즈를 설명하지 않고, 어떤 장식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얼굴이 제 빛을 찾습니다.
우리는 종종 수정된 이미지를 선호합니다. 그림자 없는 피부, 일정하게 맞춰진 각도, 표정의 떨림이 없는 정답 같은 얼굴. 그런데 이 사진관에서 오래 걸음을 옮기다 보니, 주름이 얇게 드러난 눈가나 양쪽이 다르게 올라간 입꼬리에서 도리어 한 사람의 시간을 보게 됩니다. 배경천의 미세한 결이 빛을 받아 깊이를 갖듯, 삶도 어느 결 따라 흘러온 흔적이 있어 더 진하게 기억됩니다. 매끈하게 지워진 표정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온기가, 닦이며 남겨진 작은 자리에 머뭅니다.
기도 또한 때로 이와 닮아 보입니다. 무언가를 보여 주려 서두르지 않고, 조용히 의자에 앉아 마음의 배경을 펴 두는 시간. 어깨를 조금 내려놓고, 빛이 올 자리를 비워 두는 일. 그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검토하듯 바라보신다는 감각보다, 알아보신다는 믿음이 커집니다. 이사야 43장 4절의 말처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라는 문장이 마음을 지나갈 때, 세상의 기준으로는 구겨져 보이는 부분까지도 빛을 품은 자리로 느껴집니다.
사진관을 나서며 진열장 속 작은 액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넥타이가 약간 비뚤어진 할아버지의 증명사진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엔 손봐야 할 구석이 있어 보였지만, 사진 아래에는 ‘가장 닮은 얼굴’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문장이 사진과 잘 어울려서 발걸음이 느려졌습니다. 우리도 마음속에 각기 다른 크기의 사진들을 간직하고 사는 듯합니다. 어떤 날은 그중 하나가 신분을 대신하듯 우리를 설명하고, 어떤 날은 도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사진이 앞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장쯤은, 비뚤어진 넥타이까지 품은 채 “이게 나입니다”라고 조용히 말해 주는 사진이 자리를 지키고 있겠습니다.
해가 더 내려앉자, 배경천이 천천히 말려 올라가며 가게 안이 본래의 벽을 드러냈습니다. 사라지는 것은 없고, 잠시 접어 두는 것만 있었습니다. 문 밖으로 나오니 냉기가 코끝을 스치고, 주머니 속 손이 서로의 온도를 찾았습니다. 방금 찍힌 한 장의 사진처럼, 이 저녁도 누군가의 얼굴에 고요한 빛으로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빛은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는 그 앞에서 조금씩 자신을 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