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8월 30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오전, 교육관 한쪽에 서 있던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가 조용히 뚜껑을 열었습니다. 먼지 냄새와 펠트에서 스며 나오는 약한 온기가 함께 섞여 있었습니다. 조율사는 얇은 고무 쐐기를 몇 개 주머니에서 꺼내어 줄 사이에 끼우고, 손바닥에 얹힌 은빛 포크를 살짝 두드린 뒤 귀를 가까이 대었습니다. 아주 미세한 떨림, 두 박자 사이에서 엇갈려 나던 숨소리 같은 소리가 귓바퀴에 닿자, 그는 조율 렌치를 아주 조금만 움직였습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 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 작은 움직임이 울림의 결을 바꾸는 듯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급히 돌리면 금세 되돌아오니, 한 박자 쉬듯 멈춰 주어야 한다고. 나무와 금속이 서로를 이해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 말을 듣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알아차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내리는 감정과 속도가 있는데, 정작 그 사이를 잇는 쉼은 얼마나 드물었는지 떠오르곤 했습니다.
한 음을 맞출 때마다 얕게 울리던 떨림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조율사는 다시 기다렸고, 아주 미세한 각도로 렌치를 되돌렸습니다. 맞아 가는 소리는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과장된 결말도 없었습니다. 다만 균형이 생길 때 들리는 담담한 빛깔이 있었습니다. 그 빛깔이 마음 깊은 곳의 호흡과 묘하게 닮아 있었습니다.
피아노의 음계는 완벽한 순정을 포기한 타협으로 이루어진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느 한 음만 절대적으로 옳을 수 없기에, 모든 조가 함께 노래할 길을 만들기 위해 조금씩 고개를 숙인 질서. 관계도, 일상도, 믿음의 길도 그와 닮아 있지요. 너무 선명한 옳고 그름만 들이대면 곡이 시작되기도 전에 멈춰 버리곤 합니다. 각자의 사정과 상처, 시간을 조금씩 나누어 가진 후에야 합주가 가능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조율사의 손은 성급하지 않았습니다. 렌치를 놓고 숨을 고르는 그 고요가 오히려 일의 중심처럼 보였습니다.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말을 많이 한 날보다, 말이 줄어든 시간이 더 길게 남는 이유를요. 안쪽에서 사라지는 떨림을 기다려 주는 순간에 마음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경험이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확정되었나이다”(시 57:7)라고 고백했습니다. 큰 사건이 일어나서가 아니라, 안쪽의 음정이 어느 결을 만나 멈추었기 때문이었을지요.
오늘도 각자 마음 속에 여러 줄의 현이 함께 매달려 있겠지요. 어떤 줄은 어젯밤의 근심을 품고, 어떤 줄은 아침의 소망을 띠고 있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 생기는 약한 떨림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방향을 알려 주는 표시 같기도 합니다. 조율사의 귀가 그 미세한 흔들림을 단서로 삼듯, 우리 역시 삶이 내는 작은 징후들을 허투루 대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말끝이 부드러워지는 순간, 한숨이 조금 길어지는 때, 오래 미뤄 둔 안부가 마음에 비칠 때. 거기서 음정이 달라집니다.
모든 건반을 다 누르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지나는 데 충분한 화음 한 벌이 준비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녁이 오면 낮에 들리지 않던 저음이 더 깊이 울릴 때가 있습니다. 그 울림을 따라 한 걸음씩 물러서 보니, 소리의 중심이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는 사실이 보였습니다. 말수는 줄고, 귀는 열리고, 그때 비로소 한 음이 또렷해집니다. 그 음 위에 조용히 마음을 얹어 두면, 음악은 거기서부터 시작되곤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