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8월 31일 07시 01분 발행
골목을 돌아 작은 안경점 문을 밀면, 금속 방울이 서로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먼저 반깁니다. 실내는 유리 진열장이 내는 은은한 반사빛으로 환하고, 탁자 위에는 동그란 렌즈들이 얌전히 엎드려 있습니다. 주인장은 손바닥만 한 천을 접어, 렌즈에 남은 미세한 지문을 눌러 닦습니다. 알코올 냄새가 잠깐 스치고, 연마기가 낮게 윙, 하고 울립니다. 그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의 박자도 조금 느려집니다.
검사표 앞에 서면, 검은 글자들이 처음엔 늘 그랬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도수를 조금 바꾸고, 코받침을 한 칸 낮추고, 다리 끝을 살짝 말아주자, 방금 전까지 흐리던 획이 매끄럽게 선을 냅니다. 거울 속 옆얼굴이 낯설지 않은데도 어쩐지 새로워 보입니다. 주인장은 불필요한 말을 덧붙이지 않습니다. 작은 나사를 조용히 돌리고, 귀 뒤쪽에 프레임이 지나치게 눌리지 않는지 손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확인합니다. 서두르지 않는 동작들이 방 안에 잔잔한 질서를 세웁니다.
하루를 살다 보면 마음의 렌즈에도 지문이 남습니다. 급히 닫은 문에서 올라온 김이 아직 가시지 않은 채로 다음 장면을 보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잘 보이지 않으니 세상이 흐리다 여겼지만, 어쩌면 흐린 것은 바깥이 아니라 내 쪽 유리였는지도 모릅니다. 한때 잘 맞던 프레임도 시간이 지나면 귓바퀴를 눌러 두통을 만들듯, 예전에 나를 버텨주던 방식이 지금은 불편을 만들기도 합니다. 바뀐 것은 세상보다 내 도수, 내 간격, 내 무게일지 모릅니다.
주님은 커다란 조명으로 우리를 환하게 비추기보다, 작고 부드러운 천을 드는 분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번쩍이는 기적보다는, 나사 하나를 조심스레 조이는 손길로 다가오십니다. 손이 가 닿는 동안 말이 많지 않아도, 그 온기가 긴장된 숨을 풀어 줍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고전 13:12)는 말씀이 이 방의 공기와 닮았습니다. 아직 또렷하지 않은 것들이 있지만, 그 희미함 속에서도 알아볼 만큼의 빛이 있습니다.
렌즈를 닦아 다시 쓰는 순간, 같은 방인데도 사물의 테두리가 한 겹 분명해집니다. 오래된 시곗바늘이 가리키는 초 단위가 뚜렷해지고, 진열장 너머 바느질 상자에 달린 금빛 단추도 더 이상 번지지 않습니다. 거창한 교훈을 얻지 않아도, 흐림이 덜해졌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해 보입니다. 바깥으로 나오면 유리문 너머 오후 빛이 조금 더 깊습니다. 맞은편 미용실 간판의 작은 글씨가 더 이상 일렁이지 않고, 전깃줄에 앉은 새의 발가락까지 또렷합니다. 선명함은 큰 사건에서 오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코받침 한 칸, 나사 한 바퀴, 천 한 장의 온기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마음도 아마 그럴 것입니다.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고장이라기보다 조정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겠습니다. 어제의 방식이 오늘에 그대로 맞지 않을 때, 어쩌면 주님께서 새로운 간격으로 살펴보자고 작은 표시를 남기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표시를 따라 한 걸음 물러서 보니, 내 곁의 얼굴이 더 잘 보입니다. 피곤을 건너 편지지 같은 미소 한 조각이 보이고, 내 안의 숨이 어느새 가지런히 놓입니다. 이 정도의 또렷함이면, 오후를 건너기에는 충분합니다. 남은 길을 걷는 데 필요한 빛이 우리에게 이미 도착해 있음을, 안경점의 조용한 오후가 말없이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