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수선방의 저녁

📅 2026년 09월 01일 07시 01분 발행

버스 정류장 옆에 손바닥만 한 구두수선방이 있습니다. 비닐 가리개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노란 전구가 초점 흐린 빛을 내립니다. 가죽약 특유의 단내와 본드 냄새가 어우러지고, 라디오는 낮은 볼륨으로 오래된 노래를 흘려보냅니다. 낡은 의자 하나가 벽 쪽에 기대어 있고, 그 앞 작업대 위에는 둥근 망치와 짧은 못, 쇠줄, 반달 모양의 칼, 그리고 나무골이 차례대로 놓여 있습니다. 가게 주인의 손은 조용하지만 단단합니다. 망치가 굽을 두드릴 때마다 탕, 탕, 그 사이로 숨 같은 정적이 들어옵니다.

해진 굽을 새로 붙이는 일은 한 번의 기적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다림이 겹쳐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오래 버틴 것을 떼어 내고, 묵은 본드를 긁어냅니다. 재단한 밑창을 맞춰 보고, 어긋난 선을 조금 다듬습니다. 본드를 바르고, 충분히 숨을 주어 붙일 때를 잽니다. 마지막으로 망치의 납작한 면으로 사방을 두드려 결을 맞춥니다. 방금까지 삐걱이던 소리가, 어느 순간 납득한 듯 고요해집니다.

하루 끝의 발을 떠올립니다. 보도블록의 미세한 높낮이, 횡단보도의 하얀 선, 습기와 먼지가 뒤섞인 바닥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밟아 지나왔을까요. 발자국은 늘 성실하지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한쪽이 조금씩 기웁니다. 마음에도 그런 기울기가 생깁니다. 말끝이 거칠어지고, 기억은 예민해지고, 어느 때는 작은 소리에도 금세 닳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수선방 문턱을 넘는 사람들의 손에는 단지 신발만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은 하루의 울림이 함께 얹혀 있는 듯합니다.

성경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고 전해 줍니다(이사야 42:3). 부서진 것을 버리기보다, 다친 부분을 알아보고, 기다리며 붙여주는 손길이 있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수선방의 주인은 새것을 팔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의 모양을 살펴, 다시 걸음을 뗄 수 있게 길을 내어 줍니다. 오래 신은 가죽엔 주인의 걸음이 새겨져 있고, 그 흔적은 흠이라기보다 사연처럼 느껴집니다. 해졌다는 것은 성가신 소식이면서도, 한편으론 충분히 살아냈다는 표시이기도 하겠지요.

작업대 위에 신발을 내려놓는 동안, 사람도 조금을 내려놓습니다. 기다리는 의자에 앉아 라디오를 듣고 있노라면, 초조가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탕, 탕, 하는 규칙적인 소리 사이에 아주 작은 침묵이 들어와 마음의 박동을 닮습니다. 그 틈에서 오늘 있었던 말과 표정, 미처 돌보지 못한 생각들이 불쑥 얼굴을 내밉니다. 붙잡아 설명하려 들지 않아도, 조용히 서 있는 것만으로 조금 정리가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의 사소한 사연을 그런 모양으로 듣고 계신 듯합니다. 성급하지 않고, 판단보다 먼저 살피는 눈으로요.

다 고쳐진 구두를 건네받을 때 손바닥에 전해지는 온기가 있습니다. 새 고무의 매끈한 감촉과 익숙한 가죽의 온도가 한짝이 되어 돌아옵니다. 다시 신고 걸음을 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감각이 달라집니다. 한쪽으로 쏠리던 무게가 제 자리를 찾고, 발소리의 리듬이 고르게 이어집니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 리듬이 묵묵하게 마음까지 닿습니다. 오늘도 각자의 수선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을 것입니다. 작은 불빛 아래에서, 탕과 숨 사이에서, 내일의 발자국을 준비하는 일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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