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앞의 잠깐

📅 2026년 09월 09일 07시 01분 발행

점심이 지나 한결 느슨해진 오후, 우체국 안쪽으로 들어서면 사서함들이 작은 골목처럼 줄지어 서 있습니다. 금속문마다 숫자가 붙어 있고, 손바닥만 한 열쇠가 각자의 문을 기억하듯 매달려 있습니다. 누군가는 금세 열어 닫고 떠나고, 누군가는 잠시 그 앞에 서서 봉투를 뒤적입니다. 종이에서 묻어나는 잉크 냄새와 오래된 스테이플의 미묘한 감촉이 어쩐지 사람 냄새 같아 보입니다.

아주 느린 손놀림으로 문을 여는 어르신 한 분이 있었습니다. 구겨진 영수증, 엽서 한 장, 광고지 몇 장이 함께 나왔지요. 그 중 엽서를 가만히 읽더니 눈가에 얇은 미소가 생겼습니다. 아무 말 없이 봉투를 접어 품에 넣는 그 순간이 오래 보였습니다. 사소해 보이는 종이 한 장이 하루의 결을 바꾸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잊지 않은 누군가의 필체가 그 위에 있기 때문이겠지요.

사서함은 자주 비어 있습니다. 텅 빈 칸을 들여다보고 돌아서는 마음에는 작은 허전함이 깃들지만, 그 빈자리 덕분에 주머니가 가벼워지기도 합니다. 비어 있음은 모자람만은 아니어서, 숨이 지나갈 틈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날엔 칸이 빼곡합니다. 며칠을 놓친 사이에 쌓인 쪽지와 봉투들이 서로 등을 밀며 버티고 있습니다. 늦게야 문을 열어도 그 안의 것들은 서두르지 않고 기다려 줍니다. 기다린다는 일의 얼굴이 이렇듯 조용하다는 사실이 참 고맙습니다.

마음에도 각자의 사서함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안에 꼭 들어가야 할 말들이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요. 못 다 건넨 미안함, 차마 말하지 못한 고마움, 함께 웃었던 순간의 조각 같은 것들 말입니다. 어떤 건 오늘이 아니라, 조금 더 지나 문을 여는 날에야 의미가 또렷해지곤 합니다. 복음서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사람 사이의 마음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마음도 때로는 이런 식으로 오갑니다. 크고 요란한 상자가 아니라, 일상의 서랍에 들어갈 만한 크기로.

우체국을 나와 햇살 한 줌이 엷게 번지는 인도를 걸었습니다. 신발 끝에 스치는 낙엽이 부드럽게 뒤집히고, 멀리서 버스 종점으로 들어오는 차량의 공회전 소리가 낮게 깔립니다. 방금 본 사서함들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오늘 내 마음의 금속문 안쪽은 어떤 모습일까요. 덜컹이던 경첩은 조금 부드러워졌을까요. 혹시 비어 있다면, 빈칸이 품고 있는 여백을 잠시 그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다. 가득 차 있다면, 한 장씩 꺼내 훑어보는 그 느린 시간이 누군가의 안부가 되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머니 안 작은 열쇠가 살짝 무게를 전했습니다. 오늘도 열릴 수 있는 문이 내 곁에 있다는 뜻처럼, 나직한 금속성의 안심이 손끝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뒤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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