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을 꿰매는 오후

📅 2026년 09월 26일 07시 00분 발행

동네 구두수선소 안은 오래된 나무 냄새와 약한 본드 향이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손바닥만 한 전등 아래, 장정 같은 다리미 모양의 받침대가 구두를 받치고 서 있고, 그 옆에 고무망치와 송곳, 왁스를 먹인 실이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깥의 시간은 분주하게 흐르는 듯했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는 망치가 내는 둔탁한 리듬이 시계처럼 템포를 정하고 있었습니다.

한 켤레의 검은 구두가 제 차례를 맞았고, 수선공은 밑창을 손끝으로 더듬었습니다. 굽의 가장자리, 고무가 닳아 얇아진 부분, 비에 젖었을 때 스며들었을 흔적까지 천천히 읽어 내려가듯 살피더니, 아무 말 없이 실을 끼운 바늘을 들었습니다. 박음질은 생각보다 느리고, 일정했습니다. 촘촘히, 또 촘촘히. 밖에서 보기엔 별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도, 안쪽에선 보이지 않는 매듭이 손에 잡히듯 단단해지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이가 묻자, 수선공은 미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조금 재워야 접착이 잘 됩니다.” 재운다,는 말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금세 붙이고, 금세 쓰는 세상 속에서, 붙인 뒤 눌러놓고, 눌러놓은 뒤 쉬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 본드는 온기와 압력, 그리고 침묵의 시간이 함께할 때 비로소 버틸 힘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마음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급하게 덮어버리면 금세 터져 나오는 서늘한 구멍들이 있고, 조용한 눌림과 기다림을 지나야만 서로 붙는 자리들이 있습니다.

왁스를 먹인 실이 가죽을 지날 때마다, 마찰이 줄어들어 매듭이 매끈해졌습니다. 반짝이는 그 얇은 막이, 삶을 미끄러지지 않게 잡아주는 자비처럼 느껴졌습니다. 말로 다 드러내지 못한 사소한 기도, 밤늦게 누군가에게 보낸 짧은 안부, 자신의 몫을 묵묵히 감당한 날의 고단함이 그런 왁스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얇은 층 하나가 포기와 포기를 가르는 경계를 견디게 해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선공의 손등에는 미세한 상처와 굳은살이 많았습니다. 자주 찔린 자리, 오래 눌려온 자리, 그러나 그 자국들 때문에 손놀림이 더 정확해 보였습니다. 상처의 기억이 야단치지 않고 살피는 법을 가르쳐 준 것 같았습니다. 성경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이사야 42:3). 부서지기 쉬운 것을 더 조심히 만지는 손길이 있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고맙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삶의 가장 얇아진 지점, 처음부터 다시 만들 수는 없어서 차마 드러내지 못한 그 구석을, 누군가는 무리하지 않게 붙여 주고, 꿰매 주고, 쉬게 해 줍니다.

한참 뒤, 새 밑창을 댄 구두가 제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반짝인다는 말 대신, 고르게 눌린 표정이 먼저 보였습니다. 새것이라기보다, 다시 걸을 수 있는 것. 장정 같은 다리미 받침대에서 내려온 구두는, 제 자리를 찾은 듯 조용히 섰습니다. 손으로 만져 보니, 단단함이 손끝에 눌려왔고, 그 단단함은 과하게 자신만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함께 걸어보자”고 낮은 톤으로 말하는 듯했습니다.

삶도 그런 오후를 통과하고 있겠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없지만 안쪽에서 촘촘히 이어지는 매듭들이 생기고, 금세 달라지지 않아 답답한 시간을 재워 두는 동안 결이 맞춰집니다. 어디에 얼마나 눌러야 하는지, 언제 손을 떼고 쉬게 해야 하는지, 그 분은 이미 알고 계신 듯했습니다. 고무망치의 둔탁한 박동이 잠시 멈출 때 들리는 적막 속에서, 우리는 때로 자신이 여태 지나온 바닥의 사연을 몰래 들키곤 합니다. 그리고 그 사연이 부끄럽지 않게 정리되는 과정을, 굳이 말로 확인하지 않아도 손끝으로 전해 받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수선소 문을 나설 때 발밑에서 작은 울림이 났습니다. 자박자박, 낯설지 않은 소리. 그러나 예전보다 흔들림이 적은 소리였습니다. 믿음의 고백도, 사랑의 약속도 어쩌면 이런 소리로 오래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걸음을 끝까지 데려다 주는 소리. 오늘 당신의 하루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꿰매지는 것들이 있다면, 그 보이지 않는 매듭이 내일의 발걸음을 단단히 잡아 줄 것입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한 켤레의 시간이 다시 서는 풍경이 조용히 아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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