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븐 불이 먼저 켜지는 새벽

📅 2026년 10월 01일 07시 00분 발행

아직 동네 가로등이 졸음을 떨치지 못한 시각, 모퉁이 제과점에서 불빛이 먼저 켜졌습니다. 투명했던 유리창은 안과 밖의 온도 차에 금세 김이 서리고, 그 안쪽에서 반죽을 치대는 둔탁한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이어졌습니다. 작은 타이머가 짧게 울리고, 흰 가루가 공중에 가볍게 떠올랐다가 빛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문틈으로 스며 나온 따뜻한 냄새가 골목을 감싸며, 아직 시작되지 않은 하루의 배경에 첫 음을 놓는 듯했습니다.

허리를 약간 굽힌 채 반죽을 들어 올리는 제빵사의 동작에는 오랜 손의 기억이 담겨 보였습니다. 손목의 기울기, 주걱이 그리는 부드러운 호, 다시 덮어주는 천의 무게까지도 서로를 잘 알고 있는 사이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굽지 않은 반죽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이미 작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누룩이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밀가루와 물을 건드려, 조용히 부풀어오르는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지요.

삶도 그럴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눈앞의 일은 잠깐 멈춘 듯 고요한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말 없는 일이 진행되는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발효의 사이가 찾아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둘러 오븐을 높여 겉만 익히면 속은 아직 생가루로 남듯, 급히 결말을 앞세울수록 마음의 결은 거칠어지곤 했습니다. 기다림이 꼭 소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런 새벽 풍경이 조용히 가르쳐 줍니다.

반죽에는 소금이 들어갑니다. 아주 조금이지만, 그 소금이 맛을 바꾸고 결을 잡습니다. 우리의 지난날에 스민 아픔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많으면 짜서 못 견디지만, 적당히 녹으면 생의 맛을 분명하게 해 주지요. 물은 흔히 눈물을 닮았습니다. 분리되어 있던 가루들이 물을 만나 하나로 모이듯, 우리가 흘렸던 눈물도 관계를 새로운 결로 엮어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눈물이 곧바로 빵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손의 온기와 시간이 함께해야 비로소 모양을 갖춥니다. 사랑이란 것도 그 온기와 시간의 또 다른 이름일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은 천국을 누룩에 비유합니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겉으로 눈에 띄지 않게 스며들어 전체를 변화시키는 일. 거창한 사건이 아니어도, 어제와 구분되지 않을 만큼 작고 은근한 변화가 삶 전체의 냄새를 바꾸는 경험을 우리는 종종 합니다. 한 마디의 따뜻한 말, 바쁜 와중에 맞잡은 손의 잠깐의 힘, 식탁에 놓인 작은 접시의 배려 같은 것들이 그렇습니다.

빵은 결국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구워집니다. 혼자서 다 먹기 위해 굳이 새벽 어둠을 깨워 불을 켜는 일은 많지 않겠지요. 골목을 채운 향기가 문을 닫지 않듯, 마음에 조금씩 더해진 친절과 배려도 어딘가로 번져 가는 법입니다. 제빵사의 뒷모습에 비치는 묵묵함을 보면서, 오늘의 우리 또한 누구를 위해 익어가고 있는지 떠올리게 됩니다. 각자의 삶이 품은 오븐이 조금씩 열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온기는 언젠가 다른 이에게도 전해질 것입니다.

해가 오르기 전, 진열대에는 아직 아무것도 놓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맛과 향이 이미 자라고 있었습니다. 첫 빵이 나올 때까지 잠시 더 필요한 것들은, 다름 아닌 숨과 시간, 그리고 믿음 같았습니다. 지나치게 강한 불도, 화려한 장식도 없이, 반죽이 스스로의 속도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지켜보는 일. 새벽 공기 속에서 그 조용한 과정을 바라보다 보니, 우리 하루의 안쪽에서도 그런 일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직 모양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향은 어쩐지 시작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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