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앞에서 풀리는 어깨

📅 2026년 10월 22일 07시 01분 발행

오래된 동네 사진관에 들어섰습니다. 유리문 안쪽으로 종이 사진들이 줄지어 걸려 있고, 접힌 모서리에 테이프 자국이 남아 있는 배경천이 벽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낮고 둥근 스툴 하나가 가운데 놓여 있고,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조용히 제 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진사는 서랍에서 작은 빗을 꺼내어 앞머리를 한 번 쓸어 올려 주고, 어깨를 살짝 만져 각도를 맞췄습니다. “조금만 힘 빼세요.” 그 말이 이상하게도 제 속을 건드렸습니다. 힘을 뺀다는 일은 늘 제일 어려운 숙제였으니까요.

조명이 켜지자 부드러운 흰빛이 얼굴을 감쌌습니다. 찬란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빛이었습니다. 그림자를 날세우지 않고 가장자리만 가만히 둥글리는 빛. 사진사는 초점을 맞추며 숨을 죽였습니다. 저도 따라 숨을 고르게 맞추었습니다. 셔터음이 세 번, 짧게 울리고 나서, 모니터에 제 얼굴들이 나란히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너무 굳었고, 하나는 웃음이 과했고, 마지막 한 장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안도 같은 것이 묻어 있었습니다. 사진사는 그걸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표정이 좋네요. 덜 지키고 있어서.”

증명사진을 찍으러 왔는데,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들켰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린 하루에도 몇 번씩 “증명”을 요청받습니다. 업무용 메일의 근거, 병원 창구의 서류, 번호표의 순번, 그리고 누군가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자격 심사까지. 그러다 보면 어깨가 점점 올라갑니다. 목이 짧아지고, 표정은 단단해집니다. 혹시라도 모난 데가 보일까, 말끝에 가시가 달릴까, 사진의 테두리에서 벗어날까 염려하면서요.

사진사는 리터칭 화면을 열어 주었습니다. 주름을 모두 지워달라 할까 하다가 멈추었습니다. 사진사가 먼저 말했습니다. “이마의 작은 선들은 남겨둘게요. 살아온 시간이 좋아 보이거든요.” 그 말이 낯설고 따뜻했습니다. 지워야 할 결점이 아니라, 있어도 괜찮은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순간. 빛이 얼굴의 골짜기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그늘도 사진의 일부로 품어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성경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고 속삭입니다. 사진관의 렌즈처럼 정면에서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 있는데, 그 시선은 평가가 아니라 호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 주는 순간, 사람은 잠깐 동안 자기 자신이 됩니다. 허리를 곧게 세울 필요도, 웃음을 실수로 더 바를 필요도 없습니다. 빛이 너무 세면 주름이 사라지듯, 지나친 증명 속에서는 사람의 이야기마저 옅어지는 법인데, 주님의 부르심은 오히려 우리의 선과 골을 함께 드러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선과 골 안에, 각자의 고유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지요.

사진을 찾으러 카운터에 섰을 때, 아직 따뜻함이 가시지 않은 사진들이 봉투 속에서 살짝 미끄러졌습니다. 사진사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여 주었습니다. 그 사진 속의 저는 여전히 어색했지만, 어깨 위의 힘이 눈에 띄게 내려가 있었습니다. 잠깐이었어도, 누군가의 시선이 지켜 주는 공간에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그 시선은 교정이 아니라 안심이었습니다. “이 표정이면 됩니다.” 한마디가 제일 큰 리터칭이었습니다.

문을 나서며 겨울 햇살이 어깨에 얹혔습니다. 봉투를 코트 안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걷다 보니, 오늘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았습니다. 다시 수많은 확인과 일정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래도 사진관 안에서 경험한 조용한 장면이 마음에 남았습니다. 부드러운 조명이 준 넉넉함, 주름을 살아온 시간으로 보아 주던 말, 덜 지킨 표정이 오히려 더 나답다던 판단. 그 기억이 오늘의 다른 렌즈들 앞에서도 제 어깨를 조금은 내려앉게 해 줄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신앙은, 거대한 증명을 완수하는 일이 아니라, 사랑하는 분 앞에서 자기 이름을 제대로 듣는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그 앞에서 사람은 조금씩 풀립니다. 풀린 어깨는 다시 누군가를 안아 줄 여백이 됩니다. 그렇게 하루가 바삐 흐르다가도, 문득 호명되는 순간이 찾아와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그때 우리는 표정을 꾸미기보다 눈빛을 나누게 됩니다. 지우기보다 남겨 두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 손에 쥔 작은 사진 몇 장이, 언젠가의 제 얼굴을 기억하게 하듯, 주님의 시선이 제 안에 남긴 따뜻한 잔상이 오래도록 마음속에서 빛을 잃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저녁 무렵, 봉투를 다시 열어 사진을 바라보았습니다. 완벽한 사진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낯설지 않았습니다. 렌즈 앞에서 잠깐 풀린 어깨처럼, 하루도 그렇게 조금씩 풀려 가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그 느슨함 속에서, 우리에게 이미 불려진 이름이 더 또렷해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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