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천 위의 맑아짐

📅 2026년 10월 27일 07시 02분 발행

늦은 오후, 동네 안경점 문을 밀고 들어가면 작고 맑은 종소리가 먼저 맞이합니다. 유리 진열장 너머, 파란 극세사 천과 가느다란 드라이버들이 정돈되어 있고, 공기에는 렌즈 세정제의 은근한 향이 감돕니다. 오래 쓴 안경은 어느새 귀를 조금 더 눌러 왔고, 코등에는 얇은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별일 아니라고 넘겼지만, 하루가 기울 무렵이면 그 사소함이 묵직한 피로가 되어 눈가에 머물곤 하지요.

주인장께 안경을 건네니, 손바닥 안에서 프레임이 조심스레 뒤집히고 눕혀집니다. 작은 나사 하나가 살짝 풀렸다가 다시 조여지고, 따뜻한 바람이 잠깐 스쳐 테의 모양을 바로잡습니다. 코받침의 각도도 한 칸 미세하게 바뀝니다.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데, 손끝의 기억은 압니다. ‘이제 얼굴에 맞을 거예요.’ 말씀 한 마디가 놓이는 자리에서 마음도 조금 내려앉습니다.

다시 안경을 쓰는 순간, 세상의 선이 또렷해집니다. 간판의 글씨가 물러서지 않고, 사람들의 표정에 괜한 그림자도 덜어집니다. 코등이 가벼워지고, 귀가 덜 당겨집니다. 그 변화가 거창하지 않아서 더 고맙습니다. 살다 보면 무게중심이 조금씩 어긋나고, 마음의 나사도 한두 칸 헐거워지곤 합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보이지 않는 어긋남이 하루의 맑음을 흐려놓지요. 그래서인지,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이 내 작은 불편을 알아채고 맞춰 줄 때, 설명할 수 없는 위로가 생겨납니다.

문득 성경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그 말씀은 숫자의 정확함을 넘어, 나를 향한 시선의 결을 전해 줍니다. 드라이버가 나사를 건드릴 때의 조심스러움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균형을 알고 계시다는 마음이 일렁입니다. 관계의 코받침, 기대의 다리, 자책의 프레임. 어느 하나 버리지 않으시고, 내 얼굴 그대로에 맞추어 잠시 멈춰 잡아 주시는 손길. 소리 없이 다가와 각도를 고쳐 주는 은혜가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동안, 벽시계 초침이 분초를 사뿐히 건너갑니다. 창밖을 스치는 사람들 발걸음은 제각각인데, 이 안의 시간은 유리 진열장처럼 가지런합니다. 줄지어 선 작은 공구를 보고 있노라면, 삶이란 것도 때마다 필요한 도구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창한 망치가 아니라, 어느 날은 아주 가느다란 드라이버 하나면 충분할 때가 있습니다. 말이 길지 않아도, 손끝의 미세한 회전 하나가 하루의 무게를 달리하게 합니다.

어릴 적 겨울밤, 어머니가 풀 먹인 손수건으로 안경 렌즈를 닦아 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숨이 김이 되어 렌즈를 덥히면, 천이 부드럽게 원을 그리며 흐림을 데려갔습니다. 다음 날 아침, 교복 단추는 새로 달린 듯 단단했고, 세상은 어제와 같은 자리이되 선명도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사랑은 그런 방식으로 다가왔습니다. 크게 흔들지 않고, 조용히 맞추고, 잠깐의 따뜻함으로 흐림을 걷어 내는 방식으로요.

안경점 문을 나서며 종소리가 다시 울립니다. 바뀐 것은 코받침의 각도와 나사 한 칸일 뿐인데, 길 위의 색채가 깊어 보입니다. 오늘도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렌즈가 있고, 그 위에 남은 지문과 스크래치 사이로도 빛은 들어옵니다. 얼굴에 꼭 맞는 자비의 무게가 어디쯤 얹혀 있음을 생각합니다. 언젠가 들렸던 그 작고 맑은 종소리처럼, 마음 어딘가에서 또렷해지는 울림이 오래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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