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곗방에서 들은 가장 작은 박동

📅 2026년 11월 02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골목을 돌아들면 유리창에 김이 서린 작은 시곗방이 있습니다. 오후 해가 비스듬히 들어와 낡은 작업대 위에 기름 냄새와 함께 얇게 누워 있습니다. 주인은 눈에 돋보기를 얹고 제 손목시계를 살펴보다가, 귀를 가까이 가져가 작디작은 소리를 한동안 듣습니다. 나사들은 볶은 깨알처럼 접시에 모여 있고, 천 조각엔 오래 닳아 생긴 흑연빛 선이 남아 있습니다. 구석에서 식어가는 차 한 잔, 선반 위엔 각자의 시간을 안고 온 벽시계들이 서로 다른 호흡으로 똑딱거립니다.

며칠째 빨라진 시계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주인은 웃으며 말합니다. 망가져서라기보다, 사람과 시간이 잠시 어긋난 채 살아서 오는 경우가 많다고. 그러고는 균형추를 미세하게 조정합니다. 그의 손길은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습니다. 중심으로 돌아올 때까지, 다시 말해 박동이 스스로 자리를 기억해낼 때까지 기다리는 태도처럼 보입니다.

벽에 걸린 시계들은 모두 다른 발걸음을 내딛는 듯합니다. 어떤 시계는 빛을 따라 서두르고, 어떤 시계는 그림자를 따라 머뭇거립니다. 그럼에도 정오라는 자리는 조용히,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하루도 그렇습니다. 마음이 앞서 있을 때, 분침이 달음질치듯 시간이 얕아지고, 슬픔이 길게 눌러앉을 때, 초침이 모래 위를 걷는 것처럼 더디게 움직입니다. 그럴 때마다 꾸짖는 대신 중심을 찾아주시는 손이 떠오릅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편 31:15). 말은 짧고 울림은 깊습니다.

주인은 마지막으로 유리를 닦습니다. 묻어 있던 지문이 지워지자 숫자들이 선명해집니다. 때로는 시간이 흐려진 게 아니라, 바라보는 마음이 흐린 경우가 많다는 듯이요. 기어 사이에 낀 먼지만 살짝 털어내도 소리가 달라집니다. 아주 작지만 분명한 박동이 다시 이어집니다.

시곗방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함께 들어옵니다. 퇴임 기념으로 받은 시계, 첫 월급으로 샀다는 시계, 아버지가 남기고 간 낡은 회중시계. 금속마다 체온이 묻어 있습니다. 손목에서 손목으로 옮겨진 온기와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주인의 인내가 그 사연들을 하나씩 존중해 주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바깥에선 장바구니가 부딪히는 소리, 채소를 손질하는 칼의 리듬, 멀리서 버스가 정류장에 서는 기척이 겹쳐집니다. 안쪽에선 케이스를 닫는 작은 ‘딸깍’ 소리가 납니다. 제 손목에 돌아온 시계는 이제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습니다. 발걸음이 갑자기 특별해진 것은 아니지만, 보통의 속도가 그 자체로 안심이 됩니다. 유리창에 흩어진 먼지들이 빛을 받아 반짝이다가 이내 사라집니다. 똑딱 사이사이에 있는 침묵이 생각보다 넓고, 그 넓이만큼 숨이 고르게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 사이에 하나님이 앉아 계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게 문을 나설 때 손목이 조금 가벼워졌습니다. 남은 오후가 무리하지 않고 이어질 것 같은 예감이 함께합니다. 소매 속에서 들려오는 아주 작은 소리가 오늘의 마음을 다독입니다. 아직도 부드러울 시간이 남아 있다는 듯이.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