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7월 09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오후, 시장 안쪽 작은 구두수선대 앞에 잠시 서게 되었습니다. 유리 진열장 안에는 닳은 구둣발, 짧은 못, 여러 색의 끈이 잔에 꽃처럼 꽂혀 있고, 접착제의 쌉싸래한 냄새에 가죽의 따뜻한 향이 겹쳐 있었지요. 주인은 오래된 앞치마를 두르고, 작은 망치로 톡, 톡, 간격을 재듯 소리를 쌓고 있었습니다. 벽시계가 느리게 걸음을 옮기고, 한켠의 히터 위에서 풀 같은 본드가 미지근해져 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금세 새것이 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신발을 맡기고, 종이 영수증을 받아 들고 조용히 돌아섭니다. 제 앞의 손님도 그러했습니다. 갈라진 밑창이 다시 단단히 붙을 수 있을지 묻는 표정이었고, 주인은 말없이 끄덕이며 구두틀에 신발을 끼워 넣었습니다. 그 손놀림에는 속도가 아니라 질서가 있었습니다. 접착제가 숨을 고를 시간을 주고, 모서리를 다듬고, 마지막에 못을 몇 개 박아 무게를 분산시키는 순서. 기다림이 공정의 일부라는 사실이, 어쩐지 제 마음을 내려앉히게 했습니다.
우리 삶도 비슷하지요. 발바닥이 아니라 마음의 밑창이 얇아질 때가 있습니다. 말의 가장자리가 일어나고, 관계의 꿰맨 자리에서 실밥이 비치기 시작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마다 빨리 뛰고 싶은 조급함이 고개를 들지만, 아직 본드가 마르지 않았는데 걸음을 재촉하면 다시 벌어지기 쉽습니다. 수선대의 조용한 시간처럼, 붙는 동안은 눌러 주고 지켜 보는 손길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주인의 엄지손가락이 가장 많이 닳아 있었습니다. 눌러 붙이는 그 순간, 사람의 온기가 접착의 일부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장면에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신다”(이사야 42:3). 거창한 수술이 아니라, 꺾지 않고, 끄지 않는 인내의 힘. 때로는 그 힘이 우리를 다시 걷게 만듭니다.
저는 수선대 앞 의자에 앉아 조금을 더 지켜보았습니다. 망치 소리 사이사이로 비어 있는 틈이 있었고, 그 고요가 기도처럼 들렸습니다. 말을 많이 건네지 않았지만, 서로의 사정을 아는 이들처럼 숨이 맞아 가더군요. 신발이 완성되자 주인은 한 번 더 손바닥으로 밑창을 쓸었습니다. 마치 “이제 이 무게를 감당해 보자”고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도 어디선가 얇아진 가장자리를 스스로 쓰다듬고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직 다 붙지 않은 자리, 잡아 당기지 않기로 하는 결심, 그리고 가만히 있어 주던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바닥에 가루처럼 흩어진 가죽 조각들이 구두 발자국을 따라 희미한 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오늘이 지나간 흔적일 테지요. 제 발밑의 신발도 여전히 제 무게를 배우는 중일 것입니다. 다만 아까 그 느린 손놀림을 기억하는 동안, 땅과 더 천천히 인사하는 걸음이 되었습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무엇을 서둘러 떼어내지 않겠다는 마음, 그것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했습니다. 남은 저녁, 제 삶의 얇은 곳들이 조용히 붙어 가는 시간을 허락하듯, 그렇게 발을 내려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