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5월 21일 07시 01분 발행
지하상가를 지날 때마다 한 모퉁이에서 노란 불빛이 번져 나오는 구둣방이 보입니다. 유리문 안쪽, 작은 작업대 위에 솔과 본드, 얇은 못들과 가죽 조각이 차곡차곡 놓여 있고, 장인은 허리를 약간 숙인 채 망치를 조심스레 두드립니다. 박자감 있는 소리가 길게 이어지다가 멈추고, 다시 짧고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지나가는 발자국들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는 곳에서, 누군가의 발걸음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천천히 되살아납니다.
의자 위에 잠시 내려놓인 구두를 보면, 밑창이 한쪽으로 유난히 닳은 것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걸음의 습관이 다르듯, 마음도 한쪽으로 기울 때가 있지요. 걱정이 오래 머무는 쪽, 누군가에게 미안함이 겹겹이 쌓인 쪽, 말하지 못한 서운함이 몰래 눌어붙은 쪽이 있습니다. 그 기울어진 쪽이 먼저 아파지고,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좀 버틸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묻다가, 결국 조용히 맡기고 싶어집니다. 닳은 밑창처럼, 마음도 그렇습니다. 쉽게 버리기엔 너무 아끼는 것이고,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엔 내일의 발걸음이 흔들릴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장인은 묻지 않습니다.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 어떤 돌부리에 걸렸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손끝으로 닳은 부분을 쓸어보고, 본드를 발라 붙이고, 실로 촘촘히 꿰매고, 마른 솔로 마무리합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듯합니다. 급하게 끝내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기다리는 사람의 등도 조금 펴집니다. 계산대 옆 작은 종이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수선 후에도 작은 흠은 남을 수 있습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놓이게 합니다. 완벽해지진 않아도 괜찮다는, 대신 내일의 걸음이 덜 흔들리면 된다는 약속처럼 느껴집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습니다. 말을 건네지 못했던 이, 고맙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한 순간들, 다툼 뒤에 남은 공기. 이 모든 것들은 밑창의 마모처럼 소리 없이 무늬를 남깁니다. 그 무늬를 보며,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걸음을 안 쓰다듬고 계셨다는 사실을 문득 떠올립니다. 큰 기적처럼 보이지 않아 눈치채지 못했을 뿐, 우리 안에서 천천히 이어지던 수선. 비뚤어진 걸음의 이유를 캐묻지 않으시고, 오늘의 피곤을 탓하지 않으시고, 내일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도록 보강해 주시는 은총. “주께서 나의 발걸음을 넓히사 내 발이 미끄러지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시편 18:36)라는 말씀이, 작업대 위의 망치 소리와 어쩐지 닮아 보입니다. 세게 울리지 않고, 그러나 분명히 이어지는 울림.
손에 닿는 가죽의 온도처럼, 사람 사이의 온기도 쉽게 식지 않습니다. 다만 표면에 묻은 먼지를 털고, 실밥을 정리하고, 헐거운 부분을 한 번 더 눌러 주는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 시간은 때로 침묵으로 흐르고, 때로는 짧은 안부로 지나갑니다. 기다림이 길어지면 긴 만큼 단단해지는 구석이 있듯이, 마음도 그렇게 챙김을 받아야 다시 서게 되는가 봅니다.
오늘 밤 신발을 벗을 때, 밑창에 박힌 작은 돌가루를 털어 내듯 마음 한켠에 남은 자잘한 날카로움도 살며시 내려놓아지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이미 당신의 하루 곳곳에서도 보이지 않는 수선이 진행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조용한 불빛 아래서 울리던 망치 소리처럼, 들리지는 않아도 여전히 이어지는 손길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내일의 첫 발이 조금 가벼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