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7월 21일 07시 01분 발행
교회 사무실 서랍을 정리하다, 뚜껑이 살짝 찌그러진 양철 상자를 꺼냈습니다. 손에 들어보니 작고 둥근 것들이 속에서 서로 부딪치며 은근한 소리를 냅니다. 봄날 주머니에서 모아 두었던 단추들이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빛은 바래고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손끝에 얹히는 감촉만은 또렷합니다.
어릴 적 기억이 따라옵니다. 어머니 무릎 옆, 낮은 스탠드등 아래에서 재봉틀 바퀴가 부드럽게 돌던 밤이었습니다. 바늘이 오르내리는 리듬 사이로 비누 냄새와 풀 먹인 천의 마른 향이 섞여 흘렀지요. 어머니는 침 끝을 살짝 적셔 실을 꿰고, 한숨 길이에 맞춰 바늘을 들이밀었다 빼곤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닥의 실이 옷감과 시간을 함께 꿰매는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새 단추를 달면 옷은 다시 제 모양을 찾습니다. 그런데 딱 맞는 것을 찾지 못해 모양 다른 단추를 달아 본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 어긋남이 오히려 이야기가 되곤 했습니다. 같은 모양 네 개가 아니라, 하나만 다르게 빛나는 자리. 보기 좋다는 말보다, 살아온 시간이 겹겹이 닿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하루에도 빠져나간 단추 같은 순간이 있지요. 약속을 놓쳤거나, 말끝이 사려 깊지 못했거나, 이유 없이 마음이 텅 비었던 자리. 붙잡지 못한 것이 자꾸 떠오르면, 상자 속을 뒤적이듯 기억을 흔들어 보게 됩니다. 한참 뒤에야 알아집니다. 잃어버린 자리에 굳이 같은 모양을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다는 것을요. 오늘의 마음과 오늘의 손길로 맞추어 가는 인내가 더 튼튼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것을요.
바늘을 들고 천에 첫 자국을 내는 일은 조심스럽습니다. 손끝이 살짝 찔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실은 얇지만, 두 겹 세 겹의 옷감을 건너가며 자리를 찾아갑니다. 겉에서 잘 보이지 않는 안쪽의 매듭 하나가 모든 것을 지탱합니다. 사람 사이도 그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들리는 말보다 들리지 않는 배려가 오래 옷을 붙들듯 관계를 붙듭니다.
예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한복음 6:12)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넉넉함의 한가운데서조차 남겨진 것을 귀히 여기는 마음. 어쩌면 하나님은 우리 안의 남은 숨, 남은 눈물, 남은 미소까지도 거두어 은근한 은혜로 꿰매 주시는 분이시겠지요. 그래서 완벽하지 못했던 하루에도 포개질 수 있는 자리가 생깁니다.
나이가 들수록 셔츠의 단춧구멍이 조금씩 넉넉해지듯, 마음의 구멍도 예전보다 커진 것을 느낍니다. 예민함이 무뎌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지나가야 할 것들이 더 분명해졌기 때문이겠지요. 어떤 말은 통과시키고, 어떤 감정은 머물게 하지 않는 법을, 시간을 통해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크어진 구멍을 탓하기보다, 더 부드럽게 드나드는 숨길이 생겼다고 생각해 봅니다.
상자의 가장자리에서 작고 푸른 단추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네 개의 구멍이 정직하게 뚫려 있습니다. 그 구멍들은 지나가야 할 실을 기다립니다. 우리 안의 빈자리도 그럴지 모릅니다. 허전함이 허물됨만은 아니고, 누구를 통과시켜야 할지, 어떤 고백을 묶어야 할지 알려 주는 표지인지도 모릅니다.
한 장의 천을 두 손으로 가만히 당기며 바늘을 넣고 빼는 동안, 마음도 조금 다잡힙니다. 오늘 못다 한 사과 한 마디, 건네지 못한 안부 하나, 미루어 둔 감사의 표정이 실처럼 차례를 기다립니다. 매듭은 여전히 안쪽에서 맺어지고, 겉으로는 정갈한 작은 동그라미 하나가 자리합니다. 티 나지 않게, 그러나 분명하게.
서랍을 닫기 전, 남은 단추 몇 개를 봉투에 나누어 담았습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헐거워진 자리에서 쓰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묵직해집니다. 삶은 자주 떨어지고, 다시 달 수 있습니다. 떨어졌다는 사실이 끝이 아니라, 새 매듭을 향한 신호라는 것을 이 작은 상자가 가르쳐 줍니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잦아들고 방 안이 고요해지자, 상자 속 작은 원들이 더는 부딪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쪽 어딘가, 보이지 않는 매듭 하나가 방금 지어졌다는 감각이 남습니다. 오늘의 손끝이 만든 그 조용한 매듭이, 여러분의 옷깃과 마음 한 켠에도 닿아 있을지 모릅니다. 꼭 드러나지 않아도 괜찮은, 오래 버텨 줄 모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