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7월 20일 07시 01분 발행
현관 신발장 위에 투명한 유리병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그 안에는 크기도 다른 폐건전지들이 몇 개, 서로 기대어 잠들어 있습니다. 가끔 손에 들어 살짝 흔들면, 금속이 금속을 스치는 여린 소리가 납니다. 크고 밝던 시계와 리모컨, 아이 손에 오래 머물던 장난감, 밤마다 성경책 옆을 밝혀 주던 작은 스탠드까지, 한때 누군가의 시간을 움직이고 방 한켠을 가만히 밝혔던 것들이 이곳에서 조용히 쉼을 갖습니다.
오늘은 그 병을 들여다보며 제 마음을 오래 살폈습니다. 최근 며칠, 제 안의 불빛도 가끔 깜박거렸습니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은 길었고, 사려 깊어야 할 때에 말이 조금 앞서 나가곤 했습니다. 누군가의 표정에 담긴 미세한 그늘을 한참 뒤에야 알아차렸습니다. 힘이 다한 건전지를 꺼내 갈아 끼우듯, 마음도 새 힘을 얻어야 하는데, 때로는 무엇을 더 넣어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잠시 어둡게 두고 싶은 밤도 있었습니다.
유리병을 기울여 보니 건전지 바닥에 작은 흠집들이 보였습니다. 사용의 흔적이었습니다. 그 흠집이 전혀 흉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필요할 때마다 불러내어 빛을 얻고, 끝내 힘을 다한 뒤 이렇게 돌아와 쉼을 받은 것이니까요. 문득 오래전 읽은 시편 한 구절이 조용히 마음으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셨나이다”(시편 56:8). 눈물도, 한 시절의 기운도, 흘려보내면 사라지는 줄만 알았는데, 주님은 담으시고 기억하신다 고 하였습니다. 그냥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 안에서 보살핌을 얻는다는 뜻처럼 들렸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동네 분리수거 날이면 이 병을 들고 나갑니다. 수거함에 건전지를 부을 때마다 작은 금속의 알갱이들이 서로를 스치며 낸 소리가 투명한 아침 공기 속으로 퍼져나갑니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마음이 약간 가벼워집니다. 힘 다한 것들을 어루만지듯 정리하여 맡기는 일, 그 단순한 행위 속에 어떤 믿음이 있습니다. 주님도 오늘의 낡은 숨과 다 쓴 눈빛을 함부로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의 병에 조용히 모으고 계신다는 믿음입니다. 언젠가 다시 빛으로 환원되듯, 우리의 닳은 날들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고, 다른 이의 길을 비추는 조용한 등불이 될 수 있겠지요.
가만히 떠올려 보면, 우리 곁에는 눈에 띄지 않는 전류가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 마음, 이불 속에서 천천히 식히던 근심, 누구에게도 탓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삼킨 문장들. 그것들이 완전히 소멸하지 않고, 보이는 곳에는 없지만 보살핌의 자리에 놓여 있다고 믿어 봅니다. 혹시 그래서였을까요. 오늘 유리병을 내다놓고 돌아오는 길, 손에 남은 차가운 감촉이 이상하게도 위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끝난 것이 아니라,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신호처럼요.
집으로 들어와 현관등을 켰습니다. 빛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벽에 기대 둔 우산에 묻은 물방울이 금세 제 모습을 숨기고, 바닥에 낮게 드리운 그림자가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빈 병 하나가 신발장 위에서 고요를 배우듯 가만히 있었습니다. 병 안에서 서로 부딪히던 작은 울림이 사라지자, 마음에도 얇은 고요가 내려앉았습니다. 오늘 하루가 다했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때, 주님께서 우리의 잔여한 숨결까지 아신다는 사실이, 방 안의 공기처럼 조용히 가까이 와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