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점의 조용한 손길

📅 2026년 07월 19일 07시 00분 발행

오전 늦게, 동네 버스 종점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버스가 막 들어와 엔진이 뜨거운 숨을 뱉고, 타이어에서는 먼 길을 다녀온 열기가 서서히 식습니다. 기사님은 자리에 앉지 않고 먼저 작은 머그컵부터 닦으십니다. 종이컵이 아니라 손에 길든 자기 컵, 미세한 금이 하나 나 있지만 반짝이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검은 물이 씻겨 내려가고 마지막 한 번 맑은 물로 헹군 뒤, 컵을 턱 하고 계기판 옆에 올려두십니다. 흔들리던 방향제도 잠깐 멈추고, 빈 좌석들이 가볍게 숨을 내쉽니다. 도로 위의 분주한 시간과는 다른 결이, 여기에는 있습니다.

하루를 몇 번이고 같은 길로 왕복하는 버스처럼, 우리의 시간도 비슷한 정류장들을 지나갑니다. 이름을 부르면 금방 떠오르는 일들이 있지요. 준비, 돌봄, 책임, 그리고 작은 부탁들. 때로는 내가 달린 거리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마음이 앞설 때가 있습니다. 어디까지 갔는지, 몇 사람을 태웠는지, 얼마나 정확했는지. 그런데 버스가 계속해서 다음 길을 가는 힘은, 아이러니하게도 멈춤에서 옵니다. 종점에서의 짧은 고요, 컵을 닦는 손길, 손바닥에 남은 물기를 수건으로 훔치는 그 순간. 보이지 않게 이어지는 힘줄 같은 쉼이, 다시 출발을 붙들어 줍니다.

시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그 말씀이 종점의 공기처럼 조용히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쉼은 성과의 보상이 아니라, 사랑이 먼저 건네는 선물이라는 뜻처럼 들립니다. 일이 잠깐 멈출 때, 누군가 나를 기다려 주는 감각이 깃들면 마음이 풀립니다. 누구에게도 뒤처진 것이 아니고, 누구를 억지로 앞질러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순간, 몸의 각 관절이 제자리를 찾아갑니다.

어릴 적 저녁이면 어머니가 식탁을 둥글게 닦으시던 장면이 떠오릅니다. 큰 소리 하나 없이 부스러기를 모아 손바닥에 담고, 마른 행주로 마지막 결을 맞추던 그 손놀림. 그 뒤에 가족이 둘러앉아 국을 떠 먹고, 묻어 온 하루의 냄새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떠들썩한 이야기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것은, 말이 없는 준비의 정성, 자리를 비워놓는 마음이었습니다. 버스의 종점과 식탁 사이에 흐르는 건, 아마도 같은 종류의 평안일 것입니다.

오늘의 한가운데에도 작은 종점이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길게가 아니어도 충분합니다.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말이 잦아드는 몇 호흡, 마음속 컵을 헹구듯 스스로에게 물 한 잔을 건네는 시간. 이야기를 서둘러 마치지 않고, 아직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가라앉도록 조용히 기다리는 틈. 그 사이로 은은한 빛이 스며들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가르는 얇은 선이 보이고, 그 경계에 서서도 괜찮다는 수긍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잠시 뒤, 기사님은 컵을 제자리에 두고 시동을 거십니다. 계기판에 노선 번호가 다시 밝아지고 문이 부드럽게 열립니다. 소란스럽지 않은 시작입니다. 차창 너머로 사람들이 다가오고, 빈 좌석들이 새로운 몸짓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우리도 그렇게 다시 길로 들어서게 되겠지요. 닦아 둔 마음의 컵을 조용히 챙기고, 누군가를 맞이할 빈자리를 남겨 둔 채로. 오늘의 왕복은 아마 그 마음에서부터, 무사히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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