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7월 18일 07시 00분 발행
오후가 저물 무렵,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자동문이 열리며 밀려오는 공기는 마른 종이와 풀의 냄새가 섞여 있었지요. 번호표를 뽑는 얇은 종이가 손끝에서 살짝 말려 올라가고, 천장등이 낮게 웅웅거렸습니다. 창구 옆에는 우표를 적시던 작은 스펀지 컵이 반쯤 말라 있었고, 테이프 커터기 옆 금속날은 이미 많이 닳아 빛이 죽어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각진 상자들이 무릎 위에서 자세를 바꿨고, 사람들은 작은 기침으로 시간을 접었습니다. 잠시 후, 고무 도장이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둔탁하고 규칙적인 소리, 낯선 안도의 박자였습니다.
차례를 기다리며 봉투 위에 주소를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볼펜심이 종이결을 따라 미세하게 떨릴 때, 마음의 속도도 따라 느려지더군요. 성과 이름, 번지와 동, 우편번호의 숫자들이 한 줄씩 자리 잡는 동안 숨이 고르졌습니다. 창구 안쪽 직원은 우표 모서리를 손톱으로 가볍게 눌러 매만지고, 가끔씩 젖은 솔을 스치듯 대어 접착을 도와주었습니다. 큼직한 저울 위에 상자가 올려지면 붉은 숫자가 몇 번 출렁이다가 어느 순간 정확히 멈춥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네요.” 건네는 말에, 상자뿐 아니라 마음의 무게까지 같이 달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 사이, 길 위의 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빈틈을 믿음이 메웁니다. 창구에서 손을 떼는 순간부터 상자는 우리 손을 떠나 자기만의 여정을 시작합니다. 더는 따라갈 수 없을 때 기다림이 시작되지요. 기다림은 늘 서툽니다. 훼손되지는 않을까, 제때 도착할까, 생각들은 봉투 가장자리처럼 금세 해어집니다. 그럴수록 도장이 찍히는 박자가 묘하게 안심을 줍니다. 누군가가 ‘맡아 준다’는 소리, 책임이 옮겨지는 소리 말입니다.
요즘은 마음속에도 붙이지 못한 편지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꺼내지 못한 기쁨, 끝내 말하지 못한 미안함, 오래 끌어안은 걱정. 봉투를 고르고 우표를 붙이듯 하나씩 꺼내 이름을 붙여 보면, 사연이 선명해지고 무게도 대강 짐작됩니다. 어떤 것은 얇은 엽서처럼 가볍고, 어떤 것은 두툼한 소포처럼 무겁습니다. 그 앞에서 불현듯 떠오르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벧전 5:7). 염려라는 상자에 붙일 주소가 누구를 향해야 하는지, 그 말이 은근히 일러 주는 듯했습니다.
영수증이 손에 쥐어질 때 작은 열프린터가 토해 내는 종이는 가장자리에서 살짝 말렸습니다. 거기엔 미세한 숫자들과 추적 번호가 적혀 있었지요. 믿음이란 때로 그 영수증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맡겼다는 증거이면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음을 함께 품은 종이. 주머니 속에서 몇 번이고 만져 보게 되는 얇은 확신.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결국은 기다려야만 하는 시간.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길 위에서 물류가 흐르듯, 하나님이 사람과 사건을 조용히 움직이신다는 믿음이 일어납니다.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은밀한 배려가 스며 있음을 떠올리면, 안쪽에서부터 번호표가 조금씩 앞으로 당겨지는 듯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저녁 공기가 종이처럼 얇게 서늘했습니다.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손끝은 분명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없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맡아 주기 시작했기 때문이겠지요. 도무지 줄일 수 없던 생각의 말들을 매만지고 또 매만지다가, 맞춤한 우표 하나를 붙인 듯 고요가 자리를 찾았습니다. 도착 소식이 들려오기까지 여정은 보이지 않지만 계속됩니다. 오늘의 하루도 그 길 위에 놓여 있음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자연스레 천천해졌습니다.
우체국 문이 닫히는 소리가 뒤에서 낮게 들렸습니다. 안과 밖을 가르는 소리였지만, 이상하게도 이어 주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아직 내일의 소인이 찍히지 않은 빈 봉투들이 창구 옆 함에 가지런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 빈자리의 여백이 반가웠습니다. 쓰지 않은 말이 남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언젠가 더 너그럽고 정확한 문장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적어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도 이 느린 박자를 기억하게 되겠지요. 맡김과 기다림이 서로를 완성시키는, 그 고요한 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