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의 미세한 눈금처럼

📅 2026년 10월 14일 07시 01분 발행

늦은 저녁, 부엌 선반에 작은 라디오 하나를 올려놓고 다이얼을 천천히 돌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주황빛 눈금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지지직, 하는 소리 사이로 어떤 노래의 첫마디가 어렴풋이 걸려듭니다. 조금만 더 움직이면 금세 사라지고, 반대로 되돌리면 잡음이 다시 방을 가득 채웁니다. 음악과 소음 사이의 좁은 틈, 바로 그 사이에서 오래 머물게 됩니다.

마음도 그와 비슷한 결을 지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루의 일들이 귀에 오래 남아 몸 안에서 반복 재생될 때가 있지요. 현관에 두고 온 말, 식탁에 남긴 표정, 전하지 못한 안부 같은 것이 작게 울려 퍼집니다. 거기에 알림음이 더해지고, 엘리베이터의 층수가 점등되었다 꺼지듯 마음의 숫자판도 분주해집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 주전자에서 김이 살짝 오르다 멈추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처럼, 방 안이 뜻밖의 정적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그때 다이얼을 아주 조금만 움직이면, 묻혀 있던 멜로디가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성경은 엘리야에게 들려온 “세미한 소리”를 전해줍니다(열왕기상 19:12). 큰 바람과 지진과 불 다음에야 알아챌 수 있었던 작은 숨결의 기척. 그 소리는 누군가를 압도하려는 음성이 아니라, 이미 가까이 와 있음을 알리는 기척이었을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도 서로를 알아듣지요. 가까우면 속삭임도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조용히 말씀하시는 까닭도, 어쩌면 멀리 계시지 않다는 뜻일 것입니다.

기도가 길게 이어지지 않는 밤에도, 마음이 무언가를 더듬고 있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청취처럼 느껴집니다. 말보다 먼저 찾아오는 경청, 설명보다 앞서는 머묾. 손끝으로 다이얼을 조금씩 움직이듯, 내면 어딘가의 눈금을 더하거나 덜어 보다가, 어느 순간 불필요한 소리들이 한 발 물러난 자리를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 틈으로 흘러드는 것은 정답의 선명함이라기보다, ‘함께 있다’는 조근한 온기입니다. 질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붙들고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 자리 말입니다.

어릴 적 동네 이발소에 있던 라디오는 늘 같은 채널이었지만, 하루의 시간에 따라 들리는 질감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오전에는 맑게, 오후에는 약간의 잡음이 함께, 밤이면 낮은 음 하나가 유난히 깊게 들려왔지요. 같은 음악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새로워지는 법이니, 오늘의 당신에게 맞는 음역대 역시 따로 있을 것입니다. 빛이 줄어들수록 작은 불빛이 또렷해지듯, 소리가 줄어들 때 비로소 들리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라디오의 눈금은 한 칸이 아니라, 칸 사이의 미세한 공간으로 채널을 찾습니다. 우리 삶도 또렷한 선보다 그 사이의 여백에서 방향을 배워 갑니다. 무엇을 더해야 할지, 무엇을 덜어야 할지,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밤이 있습니다. 주황빛 표시등이 제자리를 찾아 잔잔히 머무를 때, 방 안의 공기도 어딘가 한 톤 낮아지는 것 같습니다. 바깥의 소식은 그대로인데, 마음의 볼륨이 바뀌어 세상이 다르게 들립니다.

어둠은 깊어지고, 지지직거리던 소리들 사이로 한 줄의 선율이 또렷해집니다. 이 밤, 당신의 가슴에도 맞춰진 주파수가 하나 생겨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가 아니라 아주 가까이, 숨을 고르는 리듬과 맞물려서요. 어둠이 깊을수록 음악은 또렷해지는 법이니, 그렇게 오늘의 마음도 천천히 자리를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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