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방의 둥근 창 앞에서

📅 2026년 06월 24일 07시 03분 발행

오후가 길게 기울던 때, 교회 뒤쪽 작은 빨래방에 들렀습니다. 회전통이 낮게 윙 하며 돌아가고, 둥근 유리 너머로 젖은 셔츠와 수건이 스치다 떨어졌습니다. 따뜻한 수증기가 허공을 잡아당기고, 세제 냄새는 어린 날 마당의 물비린 공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플라스틱 의자에 앉으신 할머니는 타이머 숫자를 가만히 세고, 건조기 위엔 동전과 구겨진 영수증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 둥근 창을 바라보니, 오늘 제 마음도 그 안에서 함께 도는 듯했습니다. 한 바퀴마다 잊고 싶던 말 한마디, 붙잡고 싶던 얼굴 하나가 잠깐 떠올랐다가 다시 거품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물속에서는 모든 것이 조금 가벼워지고, 제자리로 돌아갈 단서가 생깁니다. 물과 시간의 질서가 그렇게 이끈다는 사실이 고마웠습니다.

세탁기는 늘 같은 순서를 지킵니다. 적시는 시간, 비비는 시간, 헹구는 시간, 고요히 돌아 물기를 빼는 시간. 우리의 하루도 어쩌면 그런 리듬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급히 말리지 않으십니다. 높은 열로 금세 바삭하게 만들지 않으시고, 낮은 바람으로 천의 결을 살리듯 천천히 품어 주십니다. 기다림이 길어 보여도 그 사이에 섬유 사이의 매듭이 누그러집니다.

유리에 달라붙었다가 떨어지는 손수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쉽게 떨어지지 않는 근심이 겹쳐졌습니다. 기도 중에 놓아드렸다고 여겨도 밤이 오면 다시 붙는 생각들. 그래도 기계는 끝내 그 손수건을 풀어냅니다. 물의 무게, 시간의 반복, 서로 부딪히며 나누는 온기가 그렇게 합니다. 우리도 종종 그렇게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시편의 한 구절이 조용히 스쳤습니다. “주께서 나의 유리함을 세셨나이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시 56:8). 둥근 창이 작은 병처럼 보였습니다. 말하지 못한 눈물과 서둘러 넘긴 미안함이 물과 함께 돌고 있었습니다. 주님이 그 수를 세신다 하시니, 흘러내린 것 하나라도 허투루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가슴을 천천히 데웠습니다.

세탁이 끝나자 할머니가 젖은 셔츠를 비닐봉지에 담으며 “이제 냄새가 빠졌네” 하고 웃으셨습니다. 냄새도 기억처럼 붙습니다. 비벼도 쉽게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을 건너온 물과 비누가 그것을 풀어내듯, 관계에 남은 말의 흔적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억지로 비틀어 짜면 천이 상하듯 마음도 해집니다. 미지근한 배려의 온기, 충분한 침묵의 헹굼, 조용한 기다림의 탈수. 그 과정을 지나면 같은 옷도 다시 어깨에 걸 수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 곁에서도 낮은 윙 소리가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마음 어딘가에 아직 물이 빠지지 않은 옷 한 벌이 무겁게 매달려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무게가 우리를 끝내 깊어지게 한다는 것, 그 사이로 스며드는 보이지 않는 손길을 오늘 빨래방에서 다시 떠올렸습니다. 기계가 멈추고 문이 열리자 따뜻한 김이 한순간 밖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그 순간의 공기처럼, 주님의 자비도 보이지 않다가 문이 열리면 온몸으로 닿곤 합니다. 우리는 그 공기를 잠시 들이마시고, 각자의 저녁으로 돌아왔습니다. 손에 든 봉지에서 나는 비누 냄새가 낯설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은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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