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사의 오후, 마음의 음

📅 2026년 06월 25일 07시 00분 발행

예배당 옆 작은 방에서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 덮개가 천천히 들어올려졌습니다. 나무와 펠트에서 나는 은은한 냄새가 먼저 퍼졌고, 형광등의 낮은 웅얼거림이 방의 바닥음을 깔았습니다. 조율사는 등받이를 곧게 세우고 앉아, 긴 렌치를 핀에 얹었습니다. 한 번에 맞추려는 성급함은 없었습니다. 작은 각도로 돌리고, 멈추고, 귀를 기울이고, 다시 아주 약간. 그 과정이 반복되는 동안, 피아노는 “아” 하고 길게 대답을 시작했습니다.

왼손으로 페달을 눌러 감춘 소리를 들어 올리고, 오른손으로 건반 하나를 눌렀습니다. 미세하게 떨리는 두 음이 서로를 찾는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박동이 사라지고 맑게 포개진 소리 하나가 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 순간 조율사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습니다. “조금만 돌려도 길이 달라집니다.” 마치 혼잣말처럼 흘러나온 말이었지만, 귀 안쪽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하루라는 악보 위에 우리 마음의 현들도 각자의 이유로 조금씩 어긋날 때가 있습니다. 일정과 소식, 여파와 여운이 뒤섞이면, 같은 음을 눌렀는데도 묘하게 다른 소리가 납니다. 그럴 때 큰 소리로 덮어버리는 선택도 가능하지만, 이 방에서처럼 멈춤이 먼저 찾아오면 어떨까요. 쉼표는 소리를 비워서 음악을 완성시키듯, 짧은 고요 하나가 마음의 전체를 보이게 해줍니다. 길게 울리는 기준음이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음들이 제 자리를 알게 되듯, 우리 안에도 방향을 알려주는 어떤 음색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는 오래 묵은 기도의 한 구절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부엌에서 끓어오르는 주전자 소리를 들으며 다잡는 호흡일 수도 있겠습니다.

조율사는 화려한 선율을 연주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한 음, 또 한 음을 확인했습니다. 큰 결심보다 작은 각도의 반복이 길을 바꾼다는 사실을 손끝으로 증언하듯이요. 성경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그 말씀은 마치, 어긋난 소리를 탓하지 않고 견디며 들어주는 귀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금 낮아진 현도, 오래 굳은 핀도, 포기되지 않는다는 약속처럼 들렸습니다.

모든 조율이 끝나자, 그는 두 손으로 잔잔한 화음을 눌렀습니다. 특별한 곡이 아닌데도 방 안의 공기가 차분히 맞물렸습니다. 소리는 크게 울리지 않았지만, 어디에도 걸리지 않는 맑음이 있었습니다. 그 맑음이 마음 한쪽을 어루만지는 듯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하루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한마디가 과하지 않게 다가와 흐트러진 마음을 수습하고, 익숙한 길모퉁이를 돌아 익숙한 걸음으로 집에 들어서는 순간이 오늘을 제자리에 놓아줍니다. 한 잔의 물을 천천히 삼키는 일, 식탁 위 빵 부스러기를 모으는 손끝, 이름을 불러주며 마주치는 시선 하나. 그렇게 사소한 것들이 기준음이 되어줍니다.

오늘의 조율은 누가 보아도 눈부시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 작은 각도들이 모여, 피아노는 다시 곡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마음에도 그런 준비가 일어나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소리와 소리 사이의 미세한 숨, 그 사이를 지켜보는 귀,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손.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은혜처럼 느껴졌습니다. 방을 나서며 문득, 내 안에서도 작게 울리는 음이 들렸습니다.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방향을 알려주는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기대어 걷는 오늘이, 생각보다 단정하게 이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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