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단추의 자리

📅 2026년 05월 14일 07시 01분 발행

오후 늦게 동네 수선집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종 하나가 맑게 울리고, 안쪽에서는 얇은 바늘이 천을 가르는 소리가 낮게 흘렀습니다. 벽에는 낡은 줄자와 분필 자국이 남은 천 조각들이 걸려 있고, 작업대 위 유리병에는 모양도 크기도 다른 단추들이 별처럼 모여 있었습니다. 주인은 손등에 오래된 반창고를 붙인 채 제 외투를 받아 듭니다. “여기 셋째 단추가 빠졌네요.” 말끝에 웃음이 있고, 램프 불빛이 손가락 마디를 노랗게 비추었습니다.

단추 하나가 사라진 자리는 생각보다 크게 보입니다. 한겨울 바람을 막아 주던 외투도 그 한 칸이 비어 있으면 왠지 허전해집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가슴을 손으로 가려붙이듯, 마음에도 그런 빈틈이 있습니다. 잠깐의 오해, 되돌리기 어려운 말 한마디, 바쁘다는 이유로 미룬 안부. 별것 아니라고 넘겼던 것들이 어느 날 문득, 셋째 칸쯤 비어 있는 자국으로 드러나곤 합니다.

잠시 뒤, 앞치마 두른 이웃 어르신이 카디건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단추 두 개가 빠졌는데, 같은 모양이 없어도 괜찮다며 웃으셨습니다. 젊은 날 아내가 종종 일부러 다른 단추를 달아 주었다고, 살다 보면 어긋나는 것들이 꼭 나쁜 모양만은 아니었다고, 그분은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서로 다른 두 개가 한 벌의 옷을 완성하듯, 마음도 그렇게 어울리는 길을 찾아 간다고요.

주인은 유리병을 흔들어 외투와 비슷한 빛깔의 단추를 찾아냅니다. 완벽히 같지는 않지만, 가까이 가만히 놓이면 어울릴 수 있는 색. 실을 끼우며 말없이 고개를 숙인 모습에서 저는 어떤 기도를 떠올렸습니다. 크게 외치지 않아도, 끊어진 곳을 조용히 이어 보려는 마음. 바늘 앞을 막아 주는 골무는, 성급한 손끝을 다치지 않게 지켜 주는 보호 같았습니다. 한 땀 한 땀, 천이 당겨지는 소리 사이로 동네 시계가 두 번 울렸습니다.

이사야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며”라고 노래했습니다(이사야 42:3). 그 구절이 오늘은 수선집 불빛 아래 앉아 있는 우리의 눈빛처럼 느껴졌습니다. 꺾이기 쉬운 부분을 더 세게 누르지 않고, 불씨 하나 남은 자리 위에 조용히 손을 가려 주는 일. 누군가의 셋째 단추를 찾아 묶어 주는 수고가, 세상을 크게 바꾸지는 못해도 한 사람의 가슴께를 따뜻하게 감싸 줍니다.

다 꿰매고 나면, 뒤집힌 천 속에 작은 매듭이 남습니다. 겉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옷을 당겨 주는 힘은 그 안쪽의 매듭에서 나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보이지 않는 매듭들이 있습니다. 미안했다는 짧은 메모, 식탁에 조용히 올려 둔 따뜻한 국 한 그릇, 말없이 건네는 손. 커다란 결심보다 그런 매듭들이 하루를 지탱합니다. 매듭이 촘촘할수록 상처 자리는 있지만 덜 아픕니다.

마지막으로 다리미가 지나가자, 외투 자락이 매끈히 누워 봄빛처럼 부드러워졌습니다. 김이 피어오르는 그 순간, 가슴속에도 눌어붙었던 주름 하나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탓하던 마음이 차츰 내려앉고, 무엇이 사라졌는지를 헤아리던 눈이, 남아 있는 것들을 한 번 더 더듬습니다. 단추 하나, 여분의 실, 누군가의 시간. 그 모든 것이 모여 옷이 다시 외투가 됩니다.

수선집을 나오며 주머니에 손을 넣어 봅니다. 새로 달린 단추의 단단한 감촉이 손끝에 닿습니다. 눈이 저물기 직전의 골목, 간판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멀리 소리 없이 노을이 접힙니다. 외투를 여며 보니, 가슴께가 조금 더 차분해졌습니다. 완벽해진 것은 아니지만, 어울릴 줄 아는 것들이 곁을 지키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하루도 그렇게, 대단한 기적 없이도 이어질 수 있겠습니다. 잃어버린 셋째 칸을 대신할 작은 둥근 것 하나가 제자리를 찾는 동안, 마음은 그 자리에 잠시 머물러 다음 걸음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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