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9월 19일 07시 00분 발행
골목 끝, 유리문에 노을이 얇게 눌어붙은 작은 수선집이 있습니다. 바늘 아래 흰 전구가 둥글게 빛나고, 페달을 밟는 발목에서 잔물결 같은 진동이 재봉틀로 전해집니다. 두두두, 두두두. 시간을 꿰매는 소리처럼 고르게 이어집니다. 바늘이 오르내릴 때마다 천이 미세하게 들어 올려졌다 내려앉고, 곁눈질로 보이는 남은 실타래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조용히 서 있습니다. 주인 할머니의 옆에는 주머니에서 꺼낸 단추들이 작은 그릇에 모여 딸각거리고, 핀쿠션에는 지난 계절의 바람 같은 바늘이 여러 개 꽂혀 있습니다.
맡겨진 옷들에는 각자의 사정이 묻어 있었습니다. 팔꿈치가 반짝이는 셔츠는 책상 앞에서 오래 기대어 있었을 것이고, 무릎이 얇아진 바지는 계단을 자주 오르내렸겠지요. 누군가의 어제와 다음 주가 이 솔기와 여밈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듯합니다. 겉에서 보기엔 한 줄 박음질에 불과한데, 뒤집어 보면 실이 방향을 바꾸고, 다시 겹치고, 작은 매듭으로 마무리되어 있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안쪽에서 옷의 모양이 다시 서고 있었습니다.
어느 때 마음도 이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크게 고치는 일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한 땀을 놓는 일이 먼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서운했던 말을 가만히 풀어 한쪽에 감아 두거나, 미처 건네지 못한 미안함을 실 끝에 묶어 놓는 일 말입니다. 크게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회복들이 천천히 진행됩니다. 오늘이 조금 비좁았던 마음에, 내일을 견딜 여유분을 안쪽에 덧대어 두는 일처럼요.
수선집 안쪽 서랍을 열면 여분의 원단이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재단할 때 미리 남겨 둔, 혹시를 위한 여백입니다. 그 여백이 있어 옷은 다시 늘어날 수 있고, 몸에 맞추어 새 호흡을 얻습니다. 삶에도 그렇게 남겨진 여백이 있다는 사실이 위로로 다가옵니다. 전부를 소진해 버리는 줄만 알았는데, 누군가는 우리 안쪽에 작게라도 비축해 둔 선을 따라 다시 이어 주십니다. 성경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신다’고 속삭이는 듯합니다(사 42:3). 힘을 주는 건 빠른 바느질이 아니라, 꾹꾹 눌러 박는 일정한 보폭과, 마침표 같은 마지막 매듭이었습니다.
옷걸이에 수선이 끝난 코트를 걸어 보니, 어깨가 약간 달라져 있었습니다. 큰 변화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몸을 맡겼을 때 느껴지는 안심이 있었습니다. 매무새를 고치듯 마음도 자리를 찾으면, 어제의 주름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표정이 달라집니다. 남아 있는 자국이 흠으로만 보이지 않고, 지나온 계절을 증언하는 질감으로 곁에 서게 됩니다.
가게를 나서며 금속 손잡이의 온기가 손바닥에 남았습니다. 어둑해진 골목 위로 재봉틀 소리가 여전히 끊어지지 않고 흘렀습니다. 오늘의 한 땀은 눈으로 확인되기 어렵지만, 안쪽에서 조용히 이어지고 있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언제였는지 모르게 헐거워진 여밈이 다시 맞닿을 때, 바람은 그대로인데도 안쪽 공기가 달라졌다고 느껴집니다. 이 느린 소리와 함께 밤이 내려앉고, 천천히 견고해지는 마음의 안쪽이 자기 자리를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