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0월 08일 07시 01분 발행
상가 2층, 좁은 계단을 오르니 간판이 빛을 조금 잃은 시계방이 나타났습니다. 유리문을 밀자 맑은 종소리가 가볍게 울렸고, 쇠와 기름이 어우러진 냄새가 오래된 서랍처럼 조용히 열렸습니다. 벽면마다 걸린 시계들이 각자 다른 박자로 초침을 옮기고 있었는데, 어긋난 합창 같으면서도 어디선가 묘한 균형이 느껴졌습니다. 주인 어르신은 눈에 돋보기를 끼고, 손바닥만 한 시계를 펼쳐 놓은 채 한 호흡씩 길게 들이쉬었다가 내쉬고 있었습니다. 그 숨결에 맞춰 작은 톱니들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고, 저는 그 미세한 흔들림을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어르신은 제 시계를 조심스레 받아들고는, 작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시계라는 건, 크게 망가지는 것보다 아주 작은 데서 비틀리는 법이지요.”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때로는 커다란 사건보다 한 치 어긋난 마음의 각도, 한 번 삼킨 말, 잊어버린 약속 한 조각에서 삐걱거리곤 하니까요. 분명 모든 것이 돌아가고 있는데도 묘하게 맞물리지 않는 느낌, 어제의 피로가 오늘의 표정을 살짝 흐리게 하는 느낌 말입니다. 정확한 원인은 손에 잡히지 않는데, 삶의 소리만 미세하게 삐걱거리는 때가 있습니다.
어르신의 손끝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가장 가는 드라이버를 집어, 거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나사를 건드리고, 작디작은 스프링의 긴장을 조금 풀었다가 다시 조입니다. 힘을 주기보다 기울기를 찾아가는 손놀림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아무 말도 없었고, 그 침묵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차분한 침묵이 방 안을 메우자, 시계들의 어긋난 박자가 조금씩 서로를 알아보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기도도 저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소리로 해결을 명하는 것이 아니라, 안쪽의 미세한 틈을 살피며, 어디에 너무 큰 힘이 들어가 있는지, 어디가 조용히 말라가고 있는지를 함께 더듬는 일 말입니다.
문득,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느니라”(마 10:30)는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큰 세계를 지으신 분이 가장 작은 수를 헤아리신다는 고백은, 과장된 위로가 아니라 이런 자리에서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사소하다고 넘겨버린 일, 남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의 옅은 그림자, 누구도 보지 못한 마음의 미세한 금을 주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조용히 자리 잡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르신의 손끝과 주님의 마음이 겹쳐 보였습니다. 요란한 망치가 아니라, 들리지 않는 호흡으로 다가와 주는 돌봄 말입니다.
수정이 끝나자, 제 시계의 초침이 부드럽게 미끄러졌습니다. 숫자는 전과 같고, 바깥의 시간도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지만, 눈금과 눈금 사이에 있던 거친 마찰음이 사라진 듯했습니다. 계산대 유리 위로 저녁빛이 얇게 흘렀고, 그 빛이 스테인리스 집게에 반사되어 작게 번쩍였습니다. 저는 시계를 손목에 다시 채우며, 제 안에도 그런 미세한 조정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크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잘못 겹쳐진 두 장의 마음을 살짝 떼어내고, 잊혀 있던 호흡을 제 자리에 돌려놓는 정도의 조정 말입니다.
밖으로 나오니 통로 바닥의 타일들이 연분홍으로 물들어 있었고, 길게 늘어진 사람들의 그림자가 서로를 피하지도, 굳이 덮지도 않은 채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어긋나 보였던 많은 소리들이 사실은 같은 하루를 지나가고 있었다는 단순한 사실이 새삼 고마웠습니다. 손목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초침의 숨이, 제 가슴의 리듬과 맞물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맞물림이 오늘을 견디게 하는 일용의 평안이라는 생각이, 조용히 따라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