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9월 17일 07시 01분 발행
오늘 낮,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번호표 전광판이 조용히 숫자를 바꾸고, 고무도장이 도각도각 책상 위를 두드립니다. 테이프가 박스를 감싸며 길게 붙는 소리, 저울판 위에서 빨간 숫자가 천천히 오르는 모습, 투명한 창구 유리 너머 직원의 차분한 손놀림이 공간을 고요하게 묶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마다 작은 상자를 하나씩 들고 있었고, 상자의 모서리마다 서로 다른 마음의 온기가 숨어 있는 듯했습니다.
보내는 일은 결국 믿는 일과 닿아 있습니다. 한 번 손을 떠난 것이 보이지 않는 길을 건너가 누군가의 손에 온전히 닿으리라는 믿음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것을 보냅니다. 변명보다 늦은 안부, 말 대신 건네는 미소, 문자로 남기는 간단한 용서, 때로는 끝내 꺼내지 못한 침묵까지도 어딘가를 향해 떠나갑니다. 그중 무엇은 곧장 도착하고, 무엇은 돌아돌아 길을 배워 도착하는 것 같습니다.
포장대 위 종이 끈과 스펀지 완충재 사이에서 주소를 쓰다 보면, 마음이 한 점으로 모입니다. 이름을 또박또박 적는 순간, 그 사람에게 가닿길 바라는 생각이 글씨의 획마다 들러붙습니다. 띄어쓰기 하나에도 망설이는 손끝에서, 우리가 대충 보낼 수 없는 마음의 내용물이 드러납니다. 가끔 오탈자를 발견해 다시 쓰기도 합니다. 주소 한 글자 틀리면 반송되듯, 마음도 종종 되돌아와 제 품을 흔듭니다. 그래도 기도의 주소는 이상하게 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받는 이의 이름에 ‘주님’이라고 쓸 수 있는 곳, 그곳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열려 있는 듯합니다.
창구 안쪽의 직원은 말수가 적었습니다. 상자를 받으면 먼저 무게를 확인하고, 어디로 가는지 묻고, 우표를 고르고, 영수증을 출력하는 동안 한 번쯤 눈을 들어 미소로 답했습니다. 과장 없이 움직이는 손과 고개 끄덕임이 믿음을 닮았습니다. 맡겨진 것을 있는 그대로 재고, 필요한 만큼 붙이고, 도장이 찍히는 순간까지 지켜보는 그 태도에서 하루를 다루는 단정함이 보였습니다.
포장대에 남아 있던 뽁뽁이를 한 칸 눌렀을 때 작은 소리가 났습니다. 문득 제 안의 오래된 것들을 이런 완충재에 싸서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해명하지 못한 미안함은 해진 스웨터처럼 구겨 넣고, 스스로를 책망하던 무거운 문장들은 두툼한 책처럼 바닥에 눕히고, 밤마다 다시 고개를 드는 걱정은 한 겹 한 겹 감쌀 수 있다면 어떨까 싶었습니다. 상자의 테이프가 모서리를 따라 한 바퀴, 또 한 바퀴 돌며 착 붙는 그 소리가, 마음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기도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도장이 찍히는 순간, 날짜와 시간이 상자 겉면에 작게 새겨졌습니다. 오늘의 시간이 이렇게 확인되는구나 싶었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온 하루에도 소인이 찍히는 시간들이 있습니다. 아침에 건네받은 다정한 눈빛, 예상 못한 피로, 뜻밖의 용기, 놓치고 지나친 향기 같은 것이 오늘의 표식이 됩니다. 때로는 ‘부재중’으로 찍히는 순간도 있고, 사소해서 기록되지 못한 순간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루의 봉투를 이루고 있는 듯했습니다.
우편물 중에는 도착이 지연되는 것도 있습니다. 추적 번호를 눌러보면 ‘이동 중’이라는 말만 오래 머무는 때가 있지요. 마음의 소식들도 비슷한 시간을 지나갑니다. 금세 닿을 줄 알았던 이해가 생각보다 더디 오고, 가볍게 보냈던 안부가 의외의 힘이 되어 돌아오기도 합니다. 반송으로 돌아온 상자를 들여다보며, 방향을 고쳐 적어 다시 보내는 일처럼, 우리도 어쩌면 그렇게 배워갑니다.
봉투 귀퉁이에 작은 글씨로 적힌 문장처럼 이런 말이 떠올랐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맡기는 일과 돌보심 사이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길이 놓여 있는 듯했습니다. 손에서 떠난 염려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다 알 수 없어도, 그 길이 튼튼하다는 확신이 마음을 조용히 받쳐 주었습니다.
문을 나서니 유리문에 낮빛이 얇게 묻어 있었습니다. 손은 비었고, 어깨는 가벼웠습니다. 무언가를 보낸 자리에는 늘 작은 빈자리가 남습니다. 그 빈자리로 빛이 드나드는 것 같았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평안이 아주 미세하게 자리 잡는 느낌이 있었고, 잠시 멈춰 선 숨이 조금 길어졌습니다. 오늘의 저는, 도장이 찍힌 상자 대신 이 감각을 품고 길을 건넜습니다. 어디에 닿을지 알 수 없지만, 닿을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오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