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저울 위에 멈춘 침묵

📅 2026년 06월 13일 07시 00분 발행

동네 우체국에 들렀습니다. 작은 소포 하나를 들고 서 있다가, 차례를 알리는 짧은 “삑” 소리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반짝이는 금속 저울 위에 상자를 올려놓자 바늘이 잠깐 떨리더니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짧은 떨림이 마치 마음이 자리를 잡는 순간 같아서, 한동안 숫자를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줄지어 선 사람들마다 다른 모양의 꾸러미를 들고 있었지요. 택배 봉투에 눌린 글자, 테이프 아래 갇힌 공기 방울, 누군가는 포장지 모서리를 정성스레 다시 문지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생일일지, 오래 미룬 안부일지, 혹은 계절이 바뀌어 보내는 옷가지일지 알 수 없었지만, 다들 얼굴에 비슷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건네는 손보다 먼저 마음이 건너가고, 마음보다 먼저 망설임이 건너가는 표정이었습니다.

주소 쓰는 칸에 받는 이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습니다. 똑같은 이름도 글씨마다 결이 달라집니다. 획이 길게 뻗으면 보고 싶은 마음이 길어 보이고, 눌러 쓰인 글자는 겨우 건넨 용기처럼 보였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그 사람에게로 나를 건네는 가장 단정한 방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볍다 하지도, 무겁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있는 무게를 받아주고, 사실을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습니다. 말하지 못해 속이 더 무거워질 때가 있습니다. 애써 밝게 웃느라 팔에 들고 있던 짐이 더 눌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을 얹어둘 저울이 우리에게도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무언가. 그저 진실한 무게를 받아내는 어딘가의 평평한 자리.

신앙의 언어로 말하자면, 그 자리는 기도일 때가 많았습니다. 다듬지 못한 말,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괜히 부끄러운 눈물까지도 올려놓았을 때, 놀랍게도 그 무게가 처음으로 자기 모양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고 전해 온 그 한 문장이, 저울의 바늘처럼 흔들리다 멈추는 마음의 순간과 닮아 보였습니다.

맡긴다는 것은 포기와는 달랐습니다. 주소를 바르게 적는 일에 가까웠습니다. 내 힘으로 품고만 있던 걱정에 수신인의 이름을 적고, 이 마음이 향해야 할 곳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직원을 거쳐 고무도장이 “탁” 하고 찍힙니다. 오늘의 날짜가 선명한 붉은 원 안에 들어서고, 소포는 제 길을 떠납니다. 그때부터는 제 손을 떠난 일이지만, 전혀 무관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맡김과 관계는 끊어짐이 아니라 믿음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계산대를 떠나자 얇은 영수증이 손바닥에 약간의 따뜻함을 남겼습니다. 프린터에서 방금 나왔다는 표식 같은 온도였습니다. 주머니에 넣어 둔 대기표는 구겨져 모서리가 휘어져 있었고, 손끝에는 소독제의 맑은 냄새가 가볍게 남아 있었습니다. 문을 나서자 햇빛이 난간의 알루미늄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모든 작은 감각들이 오늘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조용한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멀리 사는 누군가를 떠올렸습니다. 마음으로야 하루에도 몇 번씩 다녀오지만, 발로는 쉽게 닿을 수 없는 거리. 세상에는 우리가 직접 가지 못하는 곳들이 이렇게 많습니다. 그럴 때 편지는, 그리고 기도는, 우리가 건너지 못하는 거리 위로 건너가는 다리 같아 보였습니다. 튼튼하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다만 건너가면 되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저울의 침묵이 고마웠습니다. 무게를 줄이라고 재촉하지 않고, 더 담으라고 부추기지도 않았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나게 하고, 그 드러남이 다음 걸음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오늘 제 마음에도 재야 할 것들이 있었습니다. 말로 설명되지 않는 생각 몇 조각, 밤사이 눌어붙은 염려의 그림자, 전하지 못한 감사 한 줌. 어디로 보내야 할지 적어 보았습니다. 수신인의 이름을 떠올리며, 한 글자씩 천천히.

우체국을 나서는 길에, 전깃줄에 앉은 새 한 마리가 주위를 살피더니 잠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작은 몸짓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마음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듯했습니다. 바늘은 멈추었고, 주소는 또렷해졌습니다. 이제 길이 시작되겠지요. 그 길의 안녕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영수증 한 장을 접어 넣었습니다. 허전함과 안도감이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매일은 이렇게 떠나보내고 또 맡겨 보는 연습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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