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추를 거두는 저녁

📅 2026년 05월 06일 07시 00분 발행

시장 골목이 하나둘 접히는 시간에 들렀습니다. 포대자루가 어깨에서 내려오고, 스티로폼 상자가 빈집처럼 쌓였습니다. 노르스름한 전구 아래, 지폐 모서리를 펴며 수북이 세던 손길이 천천히 멈추었습니다. 어느 채소 가게 앞에서는 저울판을 젖은 천으로 닦아 광을 내고, 주머니에서는 둥근 추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돌아왔습니다. 바닥에는 배춧잎이 얇은 비늘처럼 남아 있었고, 누군가 떨어뜨린 귤 하나가 굴러가다가 멈췄습니다. 오후 내내 들고 나던 목소리들이 가늘어지고, 빗자루 소리만 길게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에 물을 넉넉히 뿌리자, 하루의 붉은 고춧가루와 잔 먼지들이 하수구 쪽으로 조심스레 옮겨갔습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니, 하루가 닫히는 마음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오늘의 말과 침묵이 저울 양쪽에 올려졌던 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때는 말 한마디가 생각보다 무거웠고, 어떤 때는 침묵이 불필요하게 가벼웠던 기억도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표정 앞에서 추 하나만 더 얹었다면 달라졌을 저울, 또는 너무 많은 추를 빠르게 올려 놓아 균형을 잃었던 대화. 저만의 호흡으로 분주히 재고 또 재던 시간들이 저녁의 물소리 속에서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시장 사람들은 남은 물건을 탓하기보다 가지런히 모으고 묶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였다고, 내일 다시 펼칠 수 있다고, 그 손길이 말없이 전하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 마음을 떠올렸습니다. 하루의 수많은 무게를 들었던 우리의 두 손이 기운 빠진 밤에도, 그분은 우리 안에 흩어진 것들을 한데 모으고 닦아 주시는군요. 저울판을 문질러 반짝임을 되찾듯, 서두르다 묻힌 사소한 미안함과 늦게 스며든 고마움이 손바닥 위에서 제 이름을 되찾는 시간. “그 인자하심이 아침마다 새롭다”(애가 3:23)는 말씀이 오래된 전구빛처럼 은근히 비쳤습니다. 오늘의 어설픔과 모자람이 내일의 부끄러움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된다는 약속처럼 느껴졌습니다.

가게 서랍 속에는 어김없이 오래된 영수증과 접힌 쪽지들이 있었습니다. 연락하지 못한 번호, 계산하다 남은 동전 몇 닢. 마음의 서랍도 다르지 않아서, 풀지 못한 질문과 미루어둔 인사가 종종 박혀 있습니다. 밤이 깊어지면 하나님께서 그 작은 것들 옆에 조용히 앉으시어, 이름 없는 감정들에 새 라벨을 붙여 주시는 듯합니다. 후회는 배움 쪽으로, 분노는 상처 입은 열망 쪽으로, 막막함은 기다림 쪽으로. 분류가 끝났다는 딱지가 붙는 건 아니지만,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게 되는 차분함이 찾아옵니다.

골목 끝 간판 불이 하나씩 꺼질 때, 누구의 호흡은 길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옷깃에 밴 마늘 냄새도 오늘의 일부가 되어 따뜻하게 따라옵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 구석에 밀어 넣고, 손등에 남은 물기처럼 마음에도 아직 거품 몇 개가 남아 반짝입니다. 그 작은 거품이 사라지기 전, 하나님이 그 빛을 보시고 미소 지으실 것만 같습니다. 내일 새벽, 문이 다시 열리면 저울은 제 자리를 잊지 않았다는 듯 고요히 서 있을 겁니다. 오늘 우리 안의 추도 조금 더 정확한 곳에 놓여 있겠지요. 그렇게 하루의 무게가 균형을 찾아가는 장면이, 닫힌 셔터 사이로 남은 빛처럼 한동안 마음에 머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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