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7월 30일 07시 02분 발행
오전 늦게 집에 조율사가 들렀습니다. 덮개를 조심스레 젖히는 손끝이 겨울옷 단추를 풀 때처럼 다정했고, 오래 눌러 자리를 잡은 먼지가 햇볕 속에서 엷은 금빛을 흘렸지요. 펠트 냄새와 금속의 매끈한 차가움이 섞여 방 안에 희미한 공방 같은 기운이 돌았습니다. 조율사는 말을 아끼고 귀를 오래 기울였습니다. 망치로 현을 톡 건드릴 때마다 방의 공기가 가볍게 떨렸고, 조용히 돌아가는 시계 초침 소리와 냉장고의 낮은 숨도 한순간 멈춘 듯했습니다.
그는 한 음만 오래 붙들었습니다. 눈으로 보면 별 차이가 없는데, 귀로는 분명히 어긋나 있었습니다. 작은 핀을 아주 미세한 각도로 돌리고, 다시 듣고, 또 조금 되돌리고. 서두름이 없는 반복 끝에 그 음이 맑아지는 순간이 오자 조율사의 어깨가 아주 조금 풀렸습니다. 그때 방 안의 사소한 것들이 제자리를 찾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식탁 위 꽃병의 물결도, 복도의 그림자도, 무엇보다 마음의 호흡이요.
우리는 종종 큰 변화로 삶을 새롭게 하려 하지만, 조율사는 어긋난 한 음을 찾아 제자리로 데려오는 일을 했습니다. 바꾸는 일이 아니라 맞추는 일. 그 차이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관계도 그렇고, 하루의 마음도 그렇고, 큰 소리로 새 노래를 부르기보다 오래 눌러두어 탁해진 음 하나를 알아듣는 일이 먼저일지 모르겠습니다. 다정한 말 뒤에 남은 서운함, 설명으로 덮인 오해, 돌아서며 삼킨 탄식 같은 것들. 눈으로는 괜찮아 보이고,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쳐도, 귀를 대고 있으면 미세한 떨림이 있습니다.
조율사의 침묵은 결코 비어 있지 않았습니다. 들으려는 마음으로 가득 찬 고요였지요. 기도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문장을 찾아 애쓰지 않고, 이미 속에서 들려오던 작은 신호에 귀를 대는 시간.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시편 139:23)라는 말씀이 방 안에 스며들 듯 떠올랐습니다.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의 어긋남을 알고 계신다는 믿음이, 현 하나하나를 만지던 그 손길과 겹쳐 보였습니다.
조율이 끝난 뒤 건반을 덮어도 맑아진 음은 공기 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현관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계단 아래로 사라진 다음에도, 방 안의 간격들이 조금 더 너그러워진 듯했습니다. 오늘 해야 할 말을 생각하면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맑아진 그 음이 말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해 주는 것 같았습니다. 내 안의 음을 내가 혼자 맞추지 못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그래서 서로의 귀가 필요하고, 때로는 내 안을 아시는 분의 조용한 손길이 필요합니다.
해가 서쪽 벽으로 천천히 옮겨앉을 때, 부엌에서 물 끓는 소리가 낮게 오르고, 이웃집 문 닫히는 소리가 멀리서 한 번 울렸습니다. 오늘 맞춰진 한 음이 그 사이를 지나가며 작은 북극성처럼 자리를 지켰습니다. 급히 어디로 달려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 음이 내일의 발걸음에 길을 잡아 줄 만큼 충분히 맑았으니까요. 잠시 귀를 기울이면, 우리 삶에도 그런 음이 있었다는 사실이 조용히 떠오르는 오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