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8월 26일 07시 01분 발행
아직 어둠이 골목 끝에 매달려 있는 시각, 버스 차고지는 희미한 조명 아래 낮게 웅웅거립니다. 기사님들이 차에 올라 계기판 불빛을 확인하고, 텀블러 뚜껑을 조심스레 여닫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립니다. 차창 안쪽에는 밤의 숨결이 얇게 김을 남기고, 손수건으로 그 자리를 닦아내는 동작이 부드럽습니다. 라디오는 작은 볼륨으로 새벽 뉴스를 흘리고, 교통카드 단말기 불빛은 준비가 되었다는 뜻처럼 깜박입니다. 첫차가 나갈 시간까지는 아직 몇 분이 남았고, 차고지의 공기에는 묵직한 금속 냄새와 커피의 고소함이 얽혀 있습니다. 출발 전의 침묵은 깊지 않지만, 충분합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차고지를 가슴속에 하나씩 지니고 사는 듯합니다. 하루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 아주 짧게라도 마음이 예열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시계는 같은 속도로 흐르지만 마음의 바늘은 그보다 느리거나 빨라서, 서로를 기다리거나 끌어당기곤 하지요.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번호표를 뽑듯 줄을 서고, 생각지도 않게 떠오르는 이름 하나가 가만히 눈앞을 스칩니다. 오래 미뤄둔 사과의 문장과, 괜히 설레는 약속의 표정이 같은 버스에 함께 오릅니다.
목회자로 살아오며 저는 이 첫 호흡의 온도를 소중히 느끼곤 했습니다. 기도를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그 몇 분 사이에 마음의 무게가 제자리를 찾아 앉는 때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안쪽에서는 의자가 천천히 뒤로 젖혀지듯, 보이지 않는 손길이 등을 받쳐 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안전벨트가 소리 없이 가슴을 가로지르는 순간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오늘의 자리로 고요히 고정해 주시는 느낌 말입니다.
물론 어떤 아침은 출발 신호가 너무 일찍 울려, 신발 끈도 다 묶기 전에 달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마음 어딘가에는 보이지 않는 여백이 꼭 남아 있더군요. 성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 잠은 단지 눈을 감는 시간이 아니라, 우리를 몰아세우는 것들에서 살짝 몸을 빼내게 하는 은총의 틈처럼 느껴집니다. 이 틈이 있어 하루가 견딜 만해지고, 늦을까 두려움에 흔들리던 손길도 다시 핸들을 잡을 수 있게 됩니다.
길 위에서는 신호가 바뀌고, 예기치 않은 정체가 생기고, 원래 가려던 방향을 바꾸어 돌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사이사이의 멈춤이 괜한 낭비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엔진에게는 꼭 필요한 휴식이 되기도 하지요.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바뀌지 않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빛의 각도가 달라져 전혀 다른 표정이 드러납니다. 도착이 조금 늦어도 무사히 도착하는 일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우리는 도착하고 나서야 깨닫곤 합니다. 우리가 손에 쥔 지도는 언제나 부분적이고, 사이드미러가 보여 주는 범위는 생각보다 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은 이어지고, 앞유리 너머로 여명이 아주 얇은 선처럼 부서지며 들어옵니다.
첫차가 차고지 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그 자리에 잠깐 더 큰 고요가 앉습니다. 누군가는 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동전 하나가 떨어졌다가 다시 주워지는 작은 소리가 납니다. 도시의 셔터가 서서히 올라가듯, 우리 마음의 셔터도 함께 올라갑니다. 오늘의 노선은 두려움만으로 쓰이지 않을 것입니다. 중간중간에 환하게 나누어 줄 인사 한 마디가 있고, 조용히 함께 들어 줄 사연 한 토막이 있습니다. 마음이 덜컹거리는 순간이 찾아와도, 출발 전 차고지의 낮은 울림이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운전자는 아니어도, 우리를 지켜 주는 손길은 분명합니다. 저녁이 되면 버스들이 다시 차고지로 돌아오듯, 우리의 하루도 제자리를 찾아 돌아올 것입니다. 뜨거웠던 엔진이 식으며 내는 잔열의 소리처럼, 오늘의 시간도 제 곁에서 천천히 식어갈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깔린 길 위에, 은근한 빛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