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0월 10일 07시 00분 발행
오후 햇살이 식탁 끝까지 흘러와 서랍 속 영수증 묶음을 밝혔습니다. 얇은 종이는 손끝만 스쳐도 바스락 소리를 내며 몸을 말아 올렸고, 잉크는 세월을 따라 옅어졌지요. 주전자에서 막 일어나는 숨이 가볍게 울리고, 계산기에는 뚜뚜 작은 박자가 찍혔습니다. 저는 한 장씩 펴서 날짜와 금액을 훑고, 모서리를 가지런히 맞추었습니다.
바쁘던 수요일의 ‘우유 두 통, 사과 한 봉지’, 마음이 어수선하던 금요일의 ‘작은 장미 한 다발’, 소나기에 급히 산 ‘우산 하나’, 이웃을 위해 샀던 떡값이 한 켠에 놓여 있었습니다. ‘포인트 적립 120원’, ‘거스름돈 0원’ 같은 칸을 지나며, 그날의 공기와 표정이 스르르 되살아났지요. 어떤 영수증은 주머니 속 세탁을 지나 풀처럼 흐물해졌고, 어떤 마음은 끝내 증빙을 남기지 못한 채 기억으로만 남았습니다.
영수증 맨 아래엔 늘 ‘합계’가 있었습니다. 무엇을 모았는지, 어디에 기울었는지, 한 달의 무게가 숫자 몇 줄에 누웠지요. 돌아보면 마음도 비슷합니다. 시간을 어디에 들였는지, 정성을 어디에 나누었는지, 눈으로는 보이지 않아도 흔적은 남습니다. 다만 마음의 합계표에는 금액 대신 온기가 찍히고, 이익 대신 관계의 결이 드러납니다.
그때 창가 먼지결 사이로 한 말씀이 고요히 떠올랐습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는 네 마음도 있으리라.”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지요. 기다림, 사과, 눈물 섞인 기도, 먼저 내민 인사, 말없이 건넨 시간. 그 무엇도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지만, 그런 것들이야말로 하루를 하루답게, 우리를 우리답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삶도 장부처럼 펼쳐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장부는 계산서보다 사랑의 일기장에 가까운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빠뜨린 항목을 찾기보다, 사소해 보여 지나친 순간을 곱게 붙여 두시는 분이지요. 등 뒤에서 짐을 잠깐 들어 준 일, 줄을 서며 한 발 물러선 여유, 마음이 거칠어질 때 숨 고르며 상처 주는 말을 삼킨 순간 같은 것들. 사람 눈에는 흐릿했지만, 주님의 기록에는 또렷한 잉크로 남아 있을 듯했습니다.
세상의 합계는 자주 부족함을 드러냈습니다. 돈도, 시간도, 기운도 어딘가 모자라 다음 달로 이월되곤 했지요. 그런데 은혜의 장부에서는 다른 계산이 진행되는가 봅니다. 모자란 자리마다 자비가 채워지고, 지나친 자리에는 배움이 남습니다. 실패는 낙인이 아니라 다시 쓰인 문장처럼 다듬어지고, 언젠가 모든 페이지가 한 권으로 묶일 때, 총합은 아마 ‘사랑’ 하나일 거라 짐작됩니다.
영수증을 정리하고 집게를 닫자, 식탁의 빛이 천천히 벽으로 물러났습니다. 계산기 화면의 숫자를 지우고 나니 마음에도 잔잔한 빈칸이 생겼지요. 그 빈칸에 오늘의 숨결이 앉았습니다. 누군가를 조용히 떠올리는 마음, 자신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시선, 여태 버텨 준 몸에게 보내는 작은 박수 같은 기색. 증빙은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선함의 흔들림이었습니다.
밤이 오면 추스르지 못한 일들이 다시 떠오를지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마음 한쪽을 지켜 주니 어둠이 덜 차갑게 느껴졌습니다. 내일의 합계는 아직 비어 있고, 그 빈칸은 은총의 여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각자의 장부에 무엇이 적혔든, 하늘의 손길은 지우개보다 등불에 가깝다는 생각이 퍼졌습니다. 그 불빛 아래서 종이의 결이 선명해지고, 사소한 선택들이 살며시 자리를 바꾸며, 우리의 합계가 조금 더 주님의 얼굴을 닮아 가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