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5월 02일 07시 00분 발행
점심 무렵, 동네 우체국을 지나며 안쪽 포장대 앞에 섰습니다. 투명한 테이프가 롤에서 풀려 나올 때 나는 맑은 찢김 소리, 저울 위에 상자를 올렸다가 숫자가 다시 0으로 돌아오는 짧은 숨, 누군가의 손끝에서 조심스럽게 붙여지는 ‘취급주의’ 붉은 스탬프. 포장대 주변에는 잘려 나간 테이프 조각과 주소가 적힌 작은 메모들이 흩어져 있고, 그 사이로 뽁뽁이의 공기방울 몇 개가 햇빛에 반짝였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상자 안에 담아 어디론가 보내고 있었습니다. 깨지기 쉬운 접시일지도, 오래 묵힌 편지일지도, 말이 다 되지 않은 감사 한 줌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마음도 종종 이렇게 포장대를 찾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 말하기 어려운 무게, 흘러넘치지 않게 싸매고 싶은 조각들, 손대면 부서질까 한껏 조심스러워지는 기억들. 상자 안에 무엇을 넣을지는 우리가 정하지만, 어디로 보낼지는 늘 고민이 남습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듯, 이 마음의 송장에는 누구의 주소를 써야 할까요. 우체국 창구에서는 번호표가 순서를 알려 주지만, 마음의 창구는 줄도 표지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 해도, 어느 날엔가 ‘보냄’이라는 결심이 조용히 찍히곤 합니다.
테이프를 빙글빙글 감는 손길을 보며 문득 떠오른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7) 누군가에게 마음을 보내는 일은 맡김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돌봄’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소를 향해 상자를 미는 일. 무엇을 얼마나 싸야 할지 정확한 법은 없지만, 바른 수신처만 적으면 나머지는 길 위에서 조금씩 자리를 찾습니다.
가끔은 반송 도장이 찍히기도 합니다. 주소불명, 수취인 부재. 기도가 그런 때가 있습니다. 보낸 줄 알았는데 다시 돌아온 마음, 여전한 자리의 고요한 봉인. 그래도 상자는 비슷하지 않습니다. 상자를 갔다 오며 무게가 달라집니다. 테이프 자국이 남고, 모서리 하나가 조금 부드러워지듯, 마음도 다녀온 길의 자국을 지닙니다. 돌아옴이 실패만은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의 왕복 끝에야 깨닫게 됩니다.
포장대 옆에서 연세 지긋한 분이 노끈으로 묶은 라면 상자를 들고 서 계셨습니다. 송장에 주소를 쓰고 난 뒤, 상자 측면 빈칸에 작은 글씨로 ‘고맙습니다’라고 적으셨습니다. 받는 이만이 볼 수 있는 인사. 아무도 모를 곳에 감사 한 줄을 숨겨 넣는 마음, 그 은밀한 친절이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도 삶의 상자 옆면 어딘가에 그런 문장을 적어 두곤 했는지, 생각이 머물렀습니다.
직원 한 분이 마지막으로 상자를 들어 올리며 도장을 찍었습니다. ‘확인’이라는 단어가 잉크 냄새와 함께 또렷이 남습니다. 무사 도착을 보증할 수는 없지만, 서로의 손길이 무사를 향해 준비되고 있다는 표지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렇듯 우리의 걸음을 세심히 감싸 안고 계시지 않을까, 들뜬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저울의 숫자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공평하게 셉니다. 다만 사랑의 무게는 눈금에 드러나지 않아도, 붙잡힌 이름과 주소 안에서 알 수 있습니다.
문을 나서며 작은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얇은 종이에 적힌 바코드와 예상 도착일. 이 조각이 내 마음을 안심시키는 약속처럼 느껴졌습니다. 신앙도 어쩌면 이런 영수증을 품는 일과 닮아 있습니다. 도착을 향한 길이 열렸다는 표식을 조용히 지니고, 아직 보이지 않는 이동을 믿으며 하루를 산다는 것. 우체국 앞 빨간 우편함 입구로 햇살이 기울고, 거리에는 보낸 것들과 아직 보내지 못한 것들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오늘 마음 안에도 포장대가 하나 열려 있습니다. 몇 번 겹쳐 붙은 테이프 사이로 미세한 공간이 남아 있듯, 단단함과 여백이 함께 숨 쉬는 자리. 주소를 뚜렷이 적을 수 있다면 좋겠고, 아직 글씨가 번지면 그 또한 괜찮아 보였습니다. 언젠가 도착할 이름을 떠올리기만 해도, 상자 하나가 조용히 길을 떠나는 듯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