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5월 15일 07시 01분 발행
버스정류장 옆, 간판 글씨가 반쯤 닳은 작은 수선집에 들렀습니다. 문 위의 종이 맑게 울리고, 낡은 형광등 아래 재봉틀이 낮게 숨을 쉬듯 떨고 있었습니다. 테이블 모서리에는 동전통만 한 깡통이 하나, 각양각색 단추들이 달빛처럼 부딪히며 누워 있었습니다. 제 코트엔 단추 하나가 사라져 둥근 빈자리만 남아 있었지요. 손끝이 그 구멍을 스치자, 모양 없는 허전함이 문득 만져졌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말수 없이 제 코트를 펼쳐 놓고 천의 결을 쓰다듬었습니다. 손바닥이 오래된 책장을 넘기듯 부드럽고 정확했습니다. 깡통 속을 뒤적이는 소리가 자갈가를 걷는 소리처럼 잔잔하게 이어지더니, 사라진 것과 가장 닮은 단추 하나가 골라졌습니다. 똑같지는 않지만,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얼굴처럼 표정이 닮아 있었습니다. 바늘귀에 실을 꿰며 아주머니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이왕이면 다른 단추들도 한 번 더 잡아줄게요.” 그리고 정말로, 떨어진 한 곳만이 아니라, 제 코트를 이루는 작은 원들 모두가 다시 단단해졌습니다. 안쪽에서 헐거워진 실밥도 보이지 않게 정리되었고, 뒤집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까지 매끈해졌습니다.
단추 하나의 결손이 옷 전체의 성격을 바꿔 놓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하루에도 비슷한 빈자리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둘러 지나친 안부, 미뤄 둔 사과, 마음속에서 빠져나간 기도의 습관 같은 것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손끝에 자꾸 걸리는 자리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큰 무늬를 덧대어 감추려 들 때가 많지요. 하지만 아주머니의 손은 감추지 않고, 대신 보이지 않는 힘줄을 다시 묶어 주었습니다. 튼튼한 실 한 올이 옷 전체를 지탱하듯, 보이지 않는 사랑 하나가 하루를 붙들어 주는 법이라는 걸요.
성경은 이렇게 속삭여 주었습니다.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4). 화려한 장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매듭 하나가 사람과 사람 사이, 오늘과 내일 사이를 흔들리지 않게 이어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옷감을 잘 아시는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느 부분이 닳았고, 어디가 잘 풀리는지를 누구보다 먼저 아시는 분. 새것으로 모조리 바꾸기보다, 남아 있는 것을 아끼며 고쳐 주시는 분. 재봉틀의 노루발이 천을 살짝 눌러 주듯, 거센 힘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압력으로, 우리 안의 느슨함을 조용히 다잡아 주시는 분 말입니다.
코트를 받아 들고 나오는 길, 엄지로 새 단추를 한 번 문질러 보았습니다. 표면에 미세한 흠집이 있었지만 그 또한 어울렸습니다. 이 단추가 오늘의 찬 바람을 견디게 하겠지요.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말끝이 어긋나 작은 틈이 생긴 채로 며칠을 지냈던 사람. 그에게 건네지 못한 한마디가, 단추 하나의 공백처럼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저녁 주머니 속에서 그 빈자리의 감촉이 사라진다면, 그건 아주머니의 바늘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마음 어딘가에서 들리지 않게 묶여 가는 보이지 않는 실 때문이겠지요.
집에 도착해 코트를 걸 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한 벌의 옷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은 값비싼 소재나 드러나는 장식이 아니라, 제자리에 맞춰진 작은 원과 눈에 띄지 않는 매듭들이라는 것을요. 우리의 하루도 그렇겠습니다. 커다란 성취가 없어도, 서로의 어깨에서 풀려 나가던 고리를 하나씩 채울 수 있다면, 오늘은 이미 충분히 따뜻한 옷감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건네는 짧은 안부 하나, 늦었지만 진심 어린 한마디가, 느슨해진 마음의 단추를 조용히 닫아 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드는 은혜는, 형광등 아래서 반짝이던 작은 단추처럼 오래 남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