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6월 02일 07시 00분 발행
시장 끝자락 2층, 유리문에 붙은 종이 종종걸음처럼 흔들리는 작은 수선집이 있습니다. 문을 열면 맑은 종소리가 먼저 인사하고, 스팀 다리미의 얕은 숨이 이어집니다. 토마토 모양 바늘꽂이가 빛바랜 계산대 위에 놓여 있고, 분필가루가 묻은 자로 길이를 재던 손길이 잠시 멈춥니다. 주인 어르신은 돋보기 너머로 바늘귀를 더듬어 실을 통과시키고, 뒤집힌 겨울 코트 한 벌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셨지요.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안쪽 솔기가 어느새 느슨해져 있었습니다.
코트 주머니를 털자 종이 영수증 몇 장과 오래된 단추 하나가 유리 접시에 ‘땅’ 하고 닿습니다. 지나간 계절의 흔적들이 작게 부딪혀 자리를 잡습니다. 다림질의 미지근한 냄새, 저만치서 흘러나오는 라디오의 낮은 멜로디, 햇빛에 떠다니는 가는 먼지까지도 조용히 자신의 위치를 찾습니다. 바늘은 오르내리며 천을 건너고, 안쪽에서만 보이는 작은 매듭이 하나 둘 생깁니다. 바깥에서는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도, 착용감은 달라지는 법이지요.
살아가는 일도 어쩌면 이와 닮았습니다. 한동안 단정히 보였던 마음이 문득 헐거워질 때가 있고, 말의 솔기가 슬며시 풀려 관계의 가장자리에서 올이 나갈 때가 있습니다. 겉면을 다잡으려 해도, 안쪽에서부터 짚어야 하는 순간이 있지요. 수선집의 어르신은 급하지 않습니다. 덧댈 천을 고르고, 여유분을 남기고, 힘이 많이 가는 곳엔 두 번 매어 줍니다. 눈에 띄지 않는 뒷면의 땀이야말로 옷을 오래 가게 합니다. 사랑도 그렇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시간을 들여 매어 주는 일, 그 느린 손길이 한 사람을 견고하게 하니까요. “사랑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골 3:14).
기다리는 동안 옷걸이에 묶인 코트는 자신의 무게를 조용히 맡깁니다. 주머니는 비워져 가볍고, 어깨선은 다림질의 김에 따라 추스를 얻습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며, 오늘 하루 제 마음이 어디에서 가장 많이 닳았는지 떠올립니다. 사소한 오해 하나가 모서리를 까슬하게 만들었는지, 하지 못한 말이 가슴 주머니 속에서 구겨진 채 남아 있는지. 어떤 때는 말 한마디가 단추처럼 툭 떨어져 나가, 잠깐 새는 바람에 옷깃이 뒤틀리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의 다정한 손이 안쪽에서 매어 준 작은 매듭 하나가 필요했습니다. 사과의 짧은 문장, 잠깐의 침묵, 손에 쥔 따뜻한 종이컵처럼 소박한 것들이 마음을 수선해 주곤 했습니다.
수선은 눈앞의 구멍만 막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르신은 제 이름표가 닳아 글씨가 희미해진 것도 살피시더니, 같은 자리에 새 길이를 재어 다시 달아 주셨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이 또렷해지는 순간, 옷이 제 주인을 찾아가는 것처럼, 우리의 자리도 다시 분명해지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우리를 다루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과를 서두르지 않으시고, 드러나지 않는 솔기부터 만지시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여유분을 남기시는 분. 내일의 움직임까지 헤아리시는 분.
수선이 끝나고 코트가 다시 겉으로 뒤집히는 순간, 방금 전까지 드러나 있던 모든 땀과 매듭은 조용히 내부로 숨어듭니다. 새로워진 것은 밖에서 크게 보이지 않지만, 어깨가 편안해지고, 주머니가 깊어졌고, 걸음에 주저함이 줄었습니다. 오늘이라는 천 위에서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크게 드러나지 않아도, 안쪽에서 단단해진 어떤 감각. 그 감각이 하루의 마무리를 가볍게 해 줍니다.
유리 접시에 남은 낡은 단추 하나를 어르신이 작은 봉투에 담아 건네며 말없이 웃으십니다. 필요할지 모르는 여분을 챙겨 주는 마음, 그 배려가 길 위에서 우리를 지켜 주곤 했습니다. 바늘끝에 맺힌 마지막 매듭이 톡 하고 사라질 때, 저마다의 마음에도 보이지 않는 단단함이 하나 생겨난 것 같습니다. 오늘의 옷을 다시 입고 문을 나서는 순간, 오래된 이름표가 또렷하게 읽히는 기쁨이 가슴 안쪽에서 천천히 번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