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대 위에 눕힌 시간

📅 2026년 06월 06일 07시 01분 발행

시장 골목 끝, 낮에도 희미한 불빛을 밝히는 작은 시계포가 있습니다. 유리 진열장 안에서 제각각의 초침들이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는 사이, 벽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한 번 울리고 사라졌습니다. 배터리를 갈러 들른 길이었는데,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 보니, 시계공의 손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돋보기를 한 눈에 끼우고, 노인은 손목시계를 조심스레 풀어 작업대 위에 눕혔습니다. 미세한 나사들이 작은 접시에 모여들고, 먼지가 낀 톱니는 가느다란 붓으로 살짝살짝 털렸습니다. 커다란 수술이 아니라, 오래된 기름의 딱딱함을 부드럽게 풀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한 방울의 윤활유가 빛을 따라 번지며 스며들 때, 가느다란 금속 사이에서 거의 들리지 않는 환한 숨소리 같은 것이 새어 나왔습니다.

그 장면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삶도 종종 그렇게 멈칫거렸습니다.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가 마음 어딘가에 걸려 초침이 헛돌던 날, 달력의 빈칸을 채우느라 분주했지만 정작 내면은 몇 초씩 늦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원인은 늘 거창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작은 마찰, 한동안 말리지 못한 눈물의 습기, 오래된 기쁨의 가루가 쌓여 만든 가벼운 더께. 스스로 다그칠수록 소리는 커졌고, 그럴수록 시간은 더 맞지 않았습니다.

시계공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귀를 아주 가까이 대고, 톱니들이 부딪히는 어딘가의 미세한 울림을 찾아 골똘히 들었습니다. 그 고요 속에서 무언가가 제자리를 되찾는 기척이 전해졌습니다.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손목에서 푸는 느낌처럼, 하루를 고스란히 풀어 한 벌의 기계처럼 조용히 눕히는 마음. 무엇이 고장이라 이름 붙여지기 전에, 그냥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바라보는 일. 정죄도 변명도 없는 자리에서, 오래된 슬픔의 굳은 기름과 작지만 소중했던 기쁨의 가루가 나란히 드러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럴 때 짧은 숨처럼 들이켜지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말이 길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한숨과 나직한 고백이 서로 얽혀, 마치 윤활유 한 방울처럼 조용히 스며드는 느낌이었습니다. 시편에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앞서가던 분침이 잠시 멈춰도, 늦어진 초침이 따라잡지 못해 조바심이 나도, 우리의 때가 놓인 자리가 결국 하나의 손바닥 안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이 마음을 고르게 했습니다.

어떤 날은 고치는 일보다 먼저 듣는 일이 더 컸습니다. 시계공이 소리를 더듬어 문제의 지점을 찾듯이, 하나님도 우리 안의 작은 마찰음을 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길이 거칠지 않았습니다. 굳은 기름을 녹이듯 부드럽고, 먼지를 털어내듯 가볍고, 나사를 조일 때처럼 단정했습니다. 속도를 끌어올리는 대신 박자를 회복시키는 방식의 사랑이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변화보다, 귀에만 들리는 변화가 먼저 오는 날들이 있었고, 그 후에야 비로소 눈금들이 질서를 되찾는 때가 있었습니다.

수리가 끝난 시계를 귀에 대 보니, 소리가 고르게 들렸습니다. 딱, 딱, 딱. 발걸음과 어긋나지 않는 박자여서인지, 시장을 나오며 둘러보는 풍경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포장마차에서 끓는 어묵 냄새가 달게 올라왔고, 햇빛이 군데군데 포장마차 천막에 박혀 있었으며, 가판대의 낡은 계산기 버튼도 어느새 반짝였습니다. 주머니 속 시계의 고른 호흡이 심장의 박자와 겹쳐지는 순간이 오면, 오늘의 해야 할 일을 다 채우지 못해도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더 얻어야만 괜찮은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시간과 곁의 사람들이 박자를 함께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힘이 되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문득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저 작업대 위에 눕혀져 있었을지 모릅니다. 보이는 큰 고장이 아닌, 들리는 작은 비틀림을 위해 귀를 기울이는 사랑의 손. 우리의 때가 그 손에 놓여 있을 때, 불쑥 멈추어 선 장면들조차 이야기의 리듬이 되어 돌아옵니다. 분침이 분침 자리를 찾아 되돌아가듯, 오늘의 우리도 제자리를 천천히 기억해 내는 중일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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