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다섯 시 전, 시계방의 숨소리

📅 2026년 06월 26일 07시 01분 발행

버스 정류장 뒤편, 간판의 페인트가 많이 벗겨진 작은 시계방이 있습니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유리 진열장에 손바닥만 한 탁상시계들이 가지런히 누워 있고, 벽면에는 각기 다른 나무틀의 괘종시계가 매달려 있습니다. 틱, 톡, 딱—소리는 하나같지 않습니다. 어떤 초침은 약간 서두르고, 어떤 분침은 머뭇거립니다. 오후 다섯 시가 가까워질수록 소리들이 겹쳐져 방 안이 얇은 파도로 흔들리는 듯합니다.

시계방 주인 어르신은 돋보기를 이마에 올린 채, 바늘끝만 한 나사를 손끝으로 돌리고 계셨습니다. 작은 드라이버가 금속을 스치는 소리가 낮게 흘러나오고, 무광의 태엽이 천천히 감깁니다. 어르신의 손등엔 세월이 만든 얇은 흉터가 많은데, 움직임에는 서두름이 없습니다. “고장난 건데요?” 하고 물으면, 그는 종종 이렇게 대답하곤 하셨습니다. “고장이라기보다, 제 박자를 잃었지요. 먼지를 털어 주고, 멈춘 곳을 찾아 살짝 건드려 주면 다시 갑니다.” 그 말을 듣고 있노라면, 멈춤이라는 말도 전부가 아니듯 들립니다.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그럴 수밖에 없던 사정이 있었다는 고백처럼 느껴집니다.

살다 보면 우리의 하루도 제각기 다른 속도로 갑니다. 앞서 간 마음을 몸이 따라잡지 못할 때도 있고, 잘 맞던 사이의 대화가 어느 날부터 한두 박자 늦게 닿을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지나치게 정각을 향해 달리고, 누군가는 정각을 두려워 잠시 멈추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데서 한 가닥 불안이 올라옵니다. 이 어긋남이 혹시 영영 맞지 않게 되는 것일까,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시계방의 다층한 소리를 듣다 보면, 완벽히 일치하지 않는 박자들이 오히려 방 안을 더 넉넉하게 메워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빠른 소리, 조금 느린 소리가 겹치며 하루의 숨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문득 시편의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나의 때가 주의 손에 있나이다”(시편 31:15). 이 말은 우리의 초침을 누가 대신 움직여 준다는 약속이라기보다, 각자의 박자와 멈춤, 다시 움직임까지도 잊히지 않는 손길 안에 있다는 고백처럼 들립니다. 때로는 우리 스스로 태엽을 감을 힘이 없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전혀 들리지 않던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내면에서 깨어날 때가 있지요.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뒷면의 스프링을 한 치만 당겨 주는 것처럼, 이유 없이 다시 걸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 분명 있습니다.

다섯 시 정각이 되자 벽의 괘종시계들이 거의 동시에, 그러나 완전히 같지는 않게 종을 울렸습니다. 먼저 울린 한 대의 종소리가 공기를 가르고, 반 박자 뒤에 다른 종이 따라오고, 또 한 대는 조금 더 늦게 긴 울림을 남깁니다. 정각은 한 점이 아니라 얇은 띠처럼 길게 이어졌고, 그 띠가 가게의 공기와 바깥의 노을빛을 부드럽게 엮어 주었습니다. 완벽한 일치는 없었지만, 그 어긋남들이 모여 저녁을 알려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시계와 꼭 맞지 않아도 괜찮아 보입니다. 아직 먼지 한 알이 어디엔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마저 삶의 일부라 여겨집니다. 급하게 돌려 맞추려 하기보다, 어디서 박자가 어긋났는지 가만히 들어보는 시간도 의미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답이 늦어지고, 나의 걸음이 느려지는 순간에도, 그 사이에 머무는 공백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지 모릅니다. 조용한 방 안에서 들리던 수많은 틱톡처럼, 각자의 리듬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고 한 공간을 따뜻하게 데우는 일이 있으니까요.

시계방을 나설 때, 주머니 속 동전들이 살짝 부딪히며 작은 소리를 냈습니다. 그 소리에 괜히 안심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는, 비록 크지 않지만 분명한 신호였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의 여러 시계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시간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박자 위로, 잠시 느려진 숨까지 받아내는 넉넉한 손길이 조용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종소리가 멀어지는 길 위에서, 그 사실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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