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붓, 조용한 채움

📅 2026년 07월 10일 07시 01분 발행

골목 끝 담장에 낮은 사다리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습니다. 햇살이 벽돌 사이를 타고 내려오고, 먼지 냄새가 가볍게 일었습니다. 낡은 모자 쓴 어르신 한 분이 작은 양동이와 손바닥만 한 붓을 들고 틈을 만지고 계셨습니다. 흙빛 가루가 붓끝에 묻어나 벽돌 금 사이로 사사삭 스며들었습니다. 망치 소리도, 큰 기계 소리도 없이, 작은 붓 하나가 오후를 채우는 모습이 낯설 만큼 고요했습니다.

어르신은 흩어진 가루를 모으듯 조심스레 틈에 쓸어 넣고는, 분무기를 꺼내 수분을 살짝 뿌리셨습니다. 방금 전까지 거칠던 금이 어둑해지며 자리 잡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 이렇게 천천히 하시느냐 여쭈니, 어르신이 웃으며 그러셨습니다. “서둘러 바르면 겉만 멀쩡하지요. 모래가 제 자릴 찾아 눌어앉아야, 비가 와도, 발소리가 지나가도 쉽게 흔들리지 않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머물렀습니다. 모래가 자리를 찾는 시간, 그 기다림이 공사 기술의 일부라는 사실이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마음에도 미세한 금이 생기곤 합니다. 기대가 비에 젖듯 무너질 때도 있고, 말을 아낀 날이 오히려 단단해진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큰 해결책을 들이붓고 싶지만, 금은 큰 소리를 잘 듣지 않는다는 것을 배웁니다. 금은 무게와 기다림을 기억합니다. 조용한 안부 한마디, 늦은 밤의 짧은 메시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묻는 “괜찮으세요” 같은 가벼운 모래알들이 틈을 먼저 채우는지 모릅니다. 물은 그 다음입니다. 시간이, 숨이, 기도 같은 습기가 스며들며 안쪽부터 붙어갑니다.

어르신은 덧붙이셨습니다. “금이 생겼다는 건 집이 살아 있다는 뜻이지요. 안 움직이는 것만 금이 안 가요.” 그 말을 들으며, 우리 안의 균열도 살아 있다는 징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프다고 해서 곧바로 잘못만은 아닙니다. 살아서 넓어지고 좁아지는 과정 속에서, 어김없이 틈이 납니다. 그 틈을 어떻게 대할지에 따라 벽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성경 한 구절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시편 147편에는 “상한 마음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서둘러 메우는 약이 아니라, 상처가 제자리를 찾을 시간을 존중하시는 손길입니다. 겉을 반지르르하게 만드는 기술보다, 깊은 곳에서부터 붙어가도록 기다려 주시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신앙은 그 기다림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안의 모래가 흩어지지 않도록, 누군가의 빈틈을 함부로 심판하지 않도록, 조용히 곁에 머무르는 법을 익히는 시간 말입니다.

오후가 기울어 그림자가 길어졌을 때, 담장엔 또렷한 선 하나가 새로 생겼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변화였지만, 지나가던 바퀴 소리에도 벽돌이 서로를 더 잘 붙들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며 문득 가슴 한켠에서도 작은 붓 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오늘 하루에 생긴 빈틈들에, 말보다 침묵이, 설명보다 시선이, 변명보다 짧은 미소가 먼저 앉을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끝이 남아 있다면, 물 한 모금 같은 안부가 먼저 자리를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습니다.

담장 앞을 떠나며 뒤돌아보니, 어르신은 여전히 붓을 들고 있었습니다. 바쁜 손놀림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손놀림이었습니다. 그 느린 속도가 오늘의 마음을 단단하게 하는 비밀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도 제 안의 금을 서둘러 감추기보다, 모래 한 줌부터 정성껏 모아 보는 저녁을 생각했습니다. 때가 되면 스며드는 물기처럼, 은은한 위로가 안에서부터 굳어 가길 바라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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