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7월 15일 07시 00분 발행
문 앞에 ‘점검 중’이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습니다. 선명한 붉은 글씨가 오늘의 오르막을 예고하는 듯했지요.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선택지도 단순해졌습니다. 기다리거나, 올라가거나. 한 손으로 난간을 잡고 첫 계단을 디디는 순간, 몸이 먼저 대답했습니다.
층과 층 사이를 잇는 길목은 평소에는 거의 기억되지 않다가, 오늘은 하나하나의 표정으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느 층에서는 금방 데운 국물 냄새가 살짝 스며나왔고, 다른 층에서는 어린아이의 웃음이 문틈을 지나왔습니다. 신문이 문 앞에 반쯤 미끄러진 채 놓여 있고, 택배 상자 위에는 굵은 매직으로 적힌 이름이 선명했습니다. 난간은 낮 동안 많은 손을 건너온 듯 미지근했지요. 계단참 작은 창으로 오후의 빛이 사선으로 들어오고, 공기 속에 떠오른 먼지 알갱이들이, 마치 아주 오래된 시간의 입자처럼 반짝였습니다.
몇 층쯤 올라가자 숨이 짧아지고, 심장이 조금 더 분명한 소리로 자기 존재를 알렸습니다. 생각해 보니, 마음은 늘 엘리베이터를 타듯 곧장 목표층으로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과정의 천천함을 견디지 못하고, 한두 계단쯤은 건너뛰고 싶은 욕심이 잦았지요. 그러다 종종 보지 못한 문패와 놓친 인사처럼, 중요한 것을 지나치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계단은 그 공백을 보여주듯 또렷했고, 숨 고르는 틈새마다 내일로 미룬 말들과 아직 꺼내지 못한 고백들이 조용히 떠올랐습니다.
위쪽에서 누군가의 느린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장바구니가 다리에 부딪히며 내는 낮은 덜컹임, 틈틈이 멈추는 규칙적인 호흡. 한 칸, 또 한 칸. 그 발걸음이 들려주는 리듬에 제 호흡도 차분히 맞추어졌습니다. 어떤 느림은 실패가 아니라 지혜라는 걸, 오늘의 계단이 알려주는 듯했습니다. 누군가의 천천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괜찮다는 신호가 되기도 하니, 어쩌면 서로의 속도가 서로를 살려내는지 모르겠습니다.
난간 옆 좁은 틈에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습니다. 흙은 약간 말라 가장자리에 얇은 금이 갔고, 잎 하나가 힘을 덜어내듯 아래로 휘어져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플라스틱 접시에 고인 물이 햇빛을 한 번 모아 반사했습니다. 이곳을 드나드는 수많은 발걸음 가운데 누군가가 틈틈이 물을 주었겠지요. 드러나지 않지만 꾸준한 마음이 건물의 공기를 조금 달라지게 합니다. 오늘 내 걸음도 누군가의 하루를 가볍게 했을지, 아니면 모르게 더 무겁게 했을지, 계단참의 고요가 그런 질문을 조용히 건넸습니다.
창문으로 스며든 빛은 먼지 위에 얇은 길을 만들어 놓았고, 그 길 위로 시간이 천천히 흘렀습니다. 계단참은 원래 지나가라고 있는 곳이지만, 동시에 잠시 머물라고 허락된 자리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믿음의 길에도 이렇게 계획되지 않은 쉼표들이 놓이곤 하지요. 그때마다 멈춤은 실패의 간격이 아니라, 다음 걸음을 위한 숨의 길이가 되어 줍니다. 사람의 걸음이 주께서 정하신다 했던가요, 그 길을 기뻐하신다고도 했습니다(시편 37:23).
마지막 층에 닿았을 때, 마스크 안으로 스며든 공기에서 이상하게도 단맛 같은 여운이 느껴졌습니다. 고단함이 나를 무너뜨리는 대신, 나를 천천히 앉혀 주는 날이 있습니다. 멈추어 선 자리에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고, 한 계단의 좁은 너비가 마음에는 넉넉한 방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의 높이는 멀고 가파른 정상이라기보다 바로 앞의 두세 칸이었습니다. 손잡이를 타고 전해지던 온기처럼, 가까이에 계신 마음을 문득 생각했습니다. 기도의 말을 오래 찾지 못하던 시간에도, 어쩌면 이미 발걸음이 기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복도에 낮게 울렸습니다. 반복되는 생활의 소리 속에서, 계단참에 머물던 빛의 모양이 마음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급히 오르내리던 발소리가 잦아들자, 오후는 의외로 너그러웠습니다. 오늘이라는 건물도, 층마다 다른 냄새와 웃음과 숨을 품은 채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한 사람의 걸음이 자신만의 속도를 찾아가고 있었습니다.